가을의 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4〉

나민애 문학평론가 2023. 11. 17. 23: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넓이와 높이보다내게 깊이를 주소서,나의 눈물에 해당하는산비탈과먼 집들에 불을 피우시고가까운 곳에서 나를 배회하게 하소서.

나의 공허를 위하여오늘은 저 황금빛 열매를 마저 그 자리를떠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게 약속하신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가을의 시' 역시 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넓이와 높이보다
내게 깊이를 주소서,
나의 눈물에 해당하는……

산비탈과
먼 집들에 불을 피우시고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배회하게 하소서.

나의 공허를 위하여
오늘은 저 황금빛 열매를 마저 그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게 약속하신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기적들을 해가 지는 먼 곳으로 따라보내소서.
지금은 비둘기 대신 저 공중으로 산까마귀들을
바람에 날리소서.

많은 진리들 가운데 위대한 공허를 선택하여
나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하략)


―김현승(1913-1975)

김현승은 가을과 기도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가을과 기도와 김현승이라는 조합은 대표작 ‘가을의 기도’ 한 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늘 소개하는 ‘가을의 시’ 역시 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하소서’로 끝나는 문장, 낮은 자세, 간절한 내용이 딱 기도 그 자체다.

기도는 언제 필요할까. ‘감사의 기도’라는 말은 있지만 행복할 때 기도는 의외로 짧게 끝난다. 반대로 우리의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붙잡을 것이 없을 때 기도의 문장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을 때, 견뎌서 다시 일어날 힘을 구할 때 기도는 찾아온다. 시인은 눈물을 흘리는 고통과 정처 없는 방황을 극복하고자 기도한다고 했다. 지금 이 시련에 담긴 큰 뜻을 이해하기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무슨 종교인지가 중요치 않고 기도하는 저 마음이 중요하다.

시인이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기도가 간절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수능 시험이 끝난 지금 많은 학생과 부모에게 시인의 기도를 전하고 싶다. 그동안 애쓴 아이들, 버틴 부모들이 기도를 붙들고 가을을 무사히 건너시기를 바랄 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