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오대산본 실록 귀향의 의미
실록 완간 직전 교정쇄로 주목
지난 9일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이 긴 타향살이를 마치고, 원래의 위치인 오대산에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실록은 왕이 승하한 후에 후대 왕 때 실록청을 구성하여 실록 편찬작업에 착수하였다. 현재 왕이 재위한 기간에 실록을 편찬하는 것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실록은 사관(史官)들이 기록한 사초(史草)와 관청의 업무일지에 해당하는 시정기(時政記) 기록을 바탕으로 완성했다.
그러나 1910년 일제가 조선을 병합한 후 실록은 모두 원래 위치에서 이동하는 수난을 겪게 됐다. 조선총독부는 처음 학무과에서 실록을 관리하게 했다가, 태백산본과 정족산본은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이관시켰다. 정족산본은 이왕직(李王職) 도서관인 창경궁 장서각에서 보관하게 했는데, 1950년 6·25전쟁 시기 한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평양으로 가져갔다.
오대산본은 동해의 주문진 항구를 통하여 1913년 일본에 유출되는 비운을 맞았다. 오대산이 있는 강원도 평창군 일대가 동해안과 가까워서 일본으로 가져가기 편리해서였다. 일본으로 건너간 오대산본은 동경제대 도서관에서 보관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고, 사건의 여파로 오대산본 실록 대부분이 사라졌다. 다행히 70여책이 화를 면하였고, 이 중 27책은 1932년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왔고, 해방 이후 27책의 오대산본 실록은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을 보관하고 있던 서울대학교에서 보관했다.
동경대에 있었지만, 해방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오대산본 47책은 우리 정부와 문화계 등의 노력으로 2006년 93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경대에서 서울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돌려받게 된 것으로서, 서울대를 거쳐 문화재청 산하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했다. 2017년에는 일본 경매에 등장한 ‘효종실록’ 1책을 국립고궁박물관이 추가로 사들여 오대산본 실록의 총수는 75책이 되었다.
고궁박물관에서 오대산본을 보관한 이후에도 원래 실록이 있었던 오대산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논의들이 꾸준히 진행되었고, 바로 지난 9일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오대산 실록은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기에 실물로 책 수량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실록의 보관 상황을 기록한 도서 점검 기록부 형식의 책인 ‘실록형지안(實錄形止案)’이 남아 있어서 총 788책이었음이 확인된다.
오대산본 실록은 실록을 완간하기 직전의 교정쇄라는 점도 주목이 된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을 다시 간행해 사고에 보관하는 과정에서, 최종 완성 전의 교정본을 오대산에 보관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에는 종이를 조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실물이 남아 있는 ‘성종실록’, ‘중종실록’, ‘선조실록’을 통해서 교정한 흔적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서적 출판에서 실제 행한 다양한 교정 방법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오대산본 실록의 자료적 가치는 크다.
오대산본 실록 75책과 의궤(儀軌) 82책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강원도 평창군 소재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실록을 지켜온 선조들의 투철한 기록정신을 접해 보기를 바란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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