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잃어버린 노래를 찾아서
문학과 음악 함께 느끼는 장르
2000년대 대중음악에 밀려나
다시 널리 듣고 불리면 좋겠다
오랜만에 은사님 댁을 방문했다. 요즘 무얼 즐겨 하시며 지내시는지 여쭈었더니 “‘가고파’를 부르고 있어.”라고 대답하셨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셨는데, 새삼 마음에 와 닿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르신다고 한다. 고향이 바닷가도 아니신데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 노랫말에서 어느 대목이 제일 좋으시냐는 질문에, 사모님은 4연의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라는 대목이, 선생님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라는 대목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좋은 노래는 품이 깊어서, 부르는 사람과 부를 때의 상황에 따라 마음을 울리는 지점이 각기 다르다.
내가 성장기를 보낸 1970∼80년대는 한국 가곡의 전성기였다. 가곡은 시에 곡을 붙여 만든 서정적인 노래로, 문학성과 음악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장르다. 음악시간에 우리는 독일 가곡인 리트를 비롯해 유럽의 가곡과 민요를 다양하게 배웠고, ‘비목’ ‘청산에 살리라’ ‘그대 있음에’ ‘별’ ‘내 마음’ ‘옛 동산에 올라’ ‘사랑’ ‘그 집 앞’ ‘그리워’ ‘진달래꽃’ ‘고향의 봄’ ‘섬집 아기’ ‘고향 생각’ 등 주옥같은 한국 가곡들도 즐겨 불렀다.
우리 세대는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가난한 부모를 따라 서울 변두리로 이사를 왔다. 낯선 도시에 부려져 밤이 늦도록 일하러 간 부모를 기다리며 숙제를 하던 세대였다. 해가 지는 게 서럽고 무서웠던 그 시절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준 것이 바로 정다운 가곡들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물결 앞에서 한국 가곡은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잃어버린 노래를 다시 부르고 아이들에게도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이 가곡이 어떻게 느껴질까.
때마침 클래식 음반 전문매장인 ‘풍월당’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한국 가곡 음반 ‘고향의 봄’을 직접 제작해 발매했는데, 나의 애창곡이 빼곡하게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세계적인 베이스 성악가 연광철 선생님이 직접 고르고 아름답게 부른 이 음반에는 내 시 ‘산 속에서’와 황경민 시인의 ‘산복도로’에 김택수 작곡가가 곡을 붙인 신작 가곡도 함께 실려 있다. 공들여 만든 음반은 물론이고 열여덟 곡의 가사 원문과 이를 영어, 독일어, 일어로 번역한 가사집 역시 한국 가곡의 품격과 세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한국적 선율과 가락이 조화를 이룬 이 노래들이 해외에서도 널리 듣고 불리면 좋겠다.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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