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려…집값 거품 빠져야할 때 가격 방어 ‘엇박자’ 날 수도”

윤지원 기자 2023. 11. 1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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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송파 비아파트 토지거래허가제 해제 후 대치동 가보니
“고금리·전세사기 탓 빌라 등 거래 기피…매매 문의 전화 많지 않아”
학원가 등 임차수요 꾸준한 인기지역 ‘갭투자’ 다시 고개 들지 촉각

“아직 매매 문의 연락이 많지는 않네요. 이미 시중에 급매물로 나온 빌라도 많은 데다, 고금리 영향에 시장도 워낙 얼어 있어서 쌓인 매물이 좀 소화돼야 집값이 움직일 것 같은데요.”(서울 강남구 대치동 A공인중개사)

서울 강남구 및 송파구 비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가 해제되면서, 서울 강남의 갭투자 수요가 살아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대치동 일대 부동산을 둘러본 결과 당장 규제 해제가 체감될 만한 분위기는 목격되지 않았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 전세사기 여파 등으로 빌라 기피 현상이 커진 데다, 고금리까지 겹쳐 이번 규제 해제만으론 시장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 15일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의 토지거래허가 대상을 아파트로 한정하는 조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치로 강남구 코엑스부터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까지 14.4㎢ 지역의 업무시설, 단독주택, 연립·다가구·다세대주택(빌라) 거래는 실거주도, 별도 허가도 필요하지 않게 됐다. 이는 곧 강남 비아파트에 대한 갭투자가 가능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고 학군지인 대치동 특성을 감안하면 결국 시간을 두고 갭투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생기는 꾸준한 임차 수요를 감안하면, 보증금을 끼고 투자에 나설 사람들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승인 10년 미만인 대치동 학원가 인근 투룸(32~37㎡) 시세는 6억원대다. 이 밖에 강남 내 재건축을 앞둔 노후 연립주택 등의 투기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 5개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다주택자 B씨는 기자와 통화하며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 단기로 임대를 놓을 만한 원룸을 알아보고 있다”면서 “토지거래허가 규제가 풀린 만큼 지금 사놓고 3년만 보유해도 향후 1억~2억원가량 벌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아파트 역시 토허제 대상에서 풀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토허제는 1979년 개발 구역의 지나친 투기를 막기 위해 토지를 대상으로 도입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2020년 6월 집값 안정화를 위해 서울 삼성·대치·청담·잠실동 도심 주택도 토허제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1989년과 1997년 헌법재판소는 토허제가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엔 토지만 규제 대상에 포함됐고, 현재는 주택까지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여전히 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토지거래허가제는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땅에 한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기에 이미 주택이 들어선 서울 도심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파트에 대한 규제 해제가 집값 상승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 완화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일부 토허제 지역은 규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압구정동 한양3차(전용면적 161㎡)는 지난 8월 53억원에 거래돼 직전 최고가(2019년 11월 36억원)보다 17억원 뛰었다.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은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 나왔던 그간 정책들이 이번 정부 들어 무장해제되고 있다”며 “아파트까지 풀어버리면 집값 거품이 빠져야 하는 시기에 가격을 방어하게 돼 엇박자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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