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뺀’ 수능의 배신
EBSi 난이도 체감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2764명 중 86% “어려웠다”
가장 어려웠던 영역에 65% “국어”
학부모 “복잡한 비킬러에 더 당황”
“고난도 문항에 사교육행” 지적도
어느 때보다도 난이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던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결국 ‘불수능’으로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킬러 문항’ 배제 기조로 내심 쉬운 수능을 기대했던 수험생들은 당황한 분위기다.
17일 EBS 고교강의 웹사이트 EBSi가 실시한 2024학년도 수능 체감 난이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2764명 중 85.9%는 수능이 어려웠다고 답했다. ‘매우 어려웠다’는 응답이 47.4%, ‘약간 어려웠다’는 응답이 38.5%였다.
영역별로 ‘매우 어려웠다’고 답한 비율은 국어영역 64.5%, 영어영역 38.2%, 수학영역 32.1% 등이었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른바 ‘킬러 문항’이 수능에서 배제되면서 상당수 수험생들이 초고난도 문제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지만, 출제당국이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까다롭게 출제하면서 기대가 빗나간 셈이 됐다.
경기 용인시 일반고 3학년 A군(18)은 “국어가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실제로 헷갈리는 선지가 많았고 개인적으로는 수학 미적분이 역대 수능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며 “수능 5개월을 남기고 킬러 문항 (배제)지침이 나오며 6월 모의평가에서 제시됐던 기준이 완전히 무효화된 데다 특정 선택과목에 변별력이 몰려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능 난도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교육부가 수능에 앞서 ‘킬러 문항을 배제한다는 것이 쉬운 수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수차례 밝혔지만, 그동안 킬러 문항을 초고난도 문항과 동의어로 생각해 온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아주 어려운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수험생 학부모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운영하는 문제 및 정답 이의신청 게시판에 “킬러 문항 배제한다고 급하게 바꾸더니 더 어려워졌다”며 “예측 가능한 출제를 해야 하는데 이젠 어떤 말로도 신뢰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수험생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수능이 끝난 뒤 “그냥 놔뒀으면 예년처럼 공부했을 텐데 괜히 들쑤셔 놨다” “수능 공부는 어렵게 해야 하는데 수험생들을 뒤흔들어 놓고 난이도가 이러면 현역들은 멘붕(멘털 붕괴)이었을 것” “계산이 복잡한 비킬러 문항에 아이가 더 당황했다고 한다”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교육부가 제시한 킬러 문항의 기준대로 ‘공교육 바깥’에서 출제된 문항이 없었더라도 ‘어려운 문항’의 존재 자체가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미라 경기 병점고 교사(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부소장)는 “킬러 문항의 정의도 애매하지만 킬러 문항이 실제로 배제됐다고 하더라도 수능이 많이 어려워 아이들이 ‘킬러’로 느낀 문제는 많았을 수 있다”며 “이렇게 수능의 난도가 올라가 버리면 아이들의 수준이 다양한 일반고에서는 상위권만을 위해 수능을 준비하기 어렵고, 학생들이 n수를 더 많이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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