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피해 인정…법원 “이명박·원세훈 배상하라”
문성근 등 36명에게 500만원씩
국가 상대 청구 “시효소멸” 기각
유인촌 장관 ‘정치적 책임’ 소지
이명박 정부 당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에 이름이 올라 피해를 입었다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법원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재판장 이세라)는 17일 배우 문성근씨와 방송인 김미화씨 등 36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이 공동해 각 원고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문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청구는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여 기각했다.
문씨 등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봤다며 이 전 대통령, 원 전 원장, 국가를 상대로 2017년 11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액은 원고 1인당 500만원으로 배상 총액은 약 1억8000만원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9월,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가 ‘좌파 연예인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반정부 성향 문화예술계 인사 총 82명을 관리했다는 내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명단에 거론된 문씨 등은 유인촌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체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2008~2011년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하차 압력을 받는 등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검찰도 2018년 1월 원 전 원장 등을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판단했다.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원 전 원장은 블랙리스트에 등재됐다는 사실만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의무가 없다고 했고, 국가는 손해배상채권 시효가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 등이 공모해 정부 비판적 활동에 참여했거나 특정 이념적 성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관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을 작성·관리하면서 좌편향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퇴출·견제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며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확인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표방하는 것과 다른 정치적 견해나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문화예술인들의 신상정보가 기재된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배포·관리한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 행위”라고 했다. 이어 “원고들의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 평등권 등을 침해한 불법행위로 그 불법성의 정도가 크다”면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원고들은 생존에 상당한 위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추가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을 겪는 등 오랜 기간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씨 등은 2017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책임을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 등으로 유 장관을 명시적으로 피고에 올리지는 않았다. 유 장관도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명박 정부 문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3년 동안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의에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유 장관이 과거 문체부 장관일 때 벌어진 일에 대해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한 만큼 유 장관도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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