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과 짜깁기한 글에 가점 주겠소[책과 삶]
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
케네스 골드스미스 지음 | 길예경·정주영 옮김
워크룸프레스 | 392쪽 | 2만5000원
미국의 시인이자 교수인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오늘날 글쓰기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봤다. 이 세계엔 이미 흥미롭고 유용한 글들이 많이 존재한다. 글쓰기의 과제는 그 엄청난 양의 글들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다. 개념 미술가 더글러스 휴블러는 1969년 “세계는 대개 흥미로운 사물로 꽉 차 있고, 난 이 이상 추가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골드스미스가 보기에 여기서 ‘사물’이란 단어를 ‘글’로 바꿔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는 200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비창조적 글쓰기’라는 강의를 시작한다. 강의의 목적은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공격을 받고 있는 시대에 헤쳐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골드스미스는 파일 공유나 디지털 복제 같은 것에 대응하기 위해 “전유와 복제, 표절, 해적질, 샘플링, 강탈 등의 전략을 작문 방법으로 이용”하자고 한다.
<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는 저자가 디지털 시대에 문예 창작의 다양한 방법을 살핀 책이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기 위해 ‘타자로 다섯 쪽 필사’를 시킨다. 온라인 논문 공장에서 논문을 구매하게 한 뒤 본인이 그 논문의 저자인 것처럼 발표도 시킨다. 자기가 쓰지 않은 글을 어떻게 남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것이다. 수업에서 ‘독창성’이나 ‘창조성’의 기미가 보이는 글을 낸 학생은 감점을 받는다. 반대로 표절, 신원 훔치기, 짜깁기, 도용을 해서 과제를 낸 학생은 가점을 받는다.
저자가 한 다양한 시도들 자체가 ‘텍스트 창작’을 소재로 한 예술 행위에 가까워 보인다. 흥미로운 시도와 개념을 다뤘지만 쉽게 읽히진 않는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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