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기후정치란 무엇인가
오로지 윤석열 심판이 되어버린 총선, 어색하면서도 신선한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등장,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정치판의 규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준석 달래기,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서울시 김포구’ 구상, 가뜩이나 대안보다 반대만 돋보였는데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허를 찔린 야당….
언제나 ‘다이내믹’했지만 총선을 5개월 앞둔 정치판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이런 게 정치라면 ‘정알못’으로서 그저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는 점점 자극적이고 속도가 빨라지는 게임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 주권자들의 관심 밖에서 ‘기후정치’라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가장 표면에서는 정의당과 녹색당이 내년 총선에서 선거연합정당이라는 협력을 추진한다. 기후를 매개로 진보정당이 힘을 합쳐 제3의 세력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창당 10년을 맞았고 올해 세계녹색당총회까지 개최했지만, 아직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한 명도 선출직을 내지 못한 녹색당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다. 반면 정의당은 전통적인 노동과 새로운 의제인 페미니즘·기후 등의 경중을 놓고 내홍에 시달리면서 당내 의견이 분열돼 쉽지 않다. 유호정·장혜영 의원은 자체적인 재창당을 지지하고 지난 대선에서 기후 후보를 자처했던 심상정 의원과 이정미 대표는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했다. 지난 5일 전국위원회에서 강서구 보궐선거 책임을 지고 이정미 대표가 물러나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중심으로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되 진보당·노동당 등 범노동계 정당으로 연합의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두 당만의 협의도 어려운데 여러 정당이 연합하려면 해법이 더 복잡해진 셈이다.
기후와 노동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이는 기후정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이다. 2018년 마크롱 정부가 탄소 중립을 위해 유류세 인상을 추진하자 운수업 등 화석연료 업종의 노동자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처음에 “월말이 문제인데 종말이 웬 말이냐”라고 외쳤지만, 점차 기후세력과 연합해 “월말, 종말 함께 투쟁”으로 선회했다. 기후와 노동의 문제가 공통으로 자본주의 과잉 생산과 글로벌 대기업으로부터 나왔기에 연합전선을 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조직된 노동계의 요구만으로는 노동 문제조차 제대로 다룰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복잡해졌고, 기후는 성장시대에 틀 지워진 노동이나 복지와는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작년과 올해 9월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모인 3만명 넘는 시민들은 노동자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졌다. 미래가 불안한 청소년과 청년들, 이들이 무사히 살아가길 염원하는 부모들, 좀 더 안전한 삶을 보장받고 싶은 사회적 약자들, 성장과 발전 대신 자연과 이웃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였다. 공공 재생에너지 전환, 공공교통 확충, 신공항 건설과 국립공원 개발사업 중단 등의 정책적 요구엔 모든 존재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굉장히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기후’라는 말은 그냥 기후가 아니라 공동의 미래라는 뜻이다. 이런 기후정의행진의 지도부 역시 기후정치를 고민한다. 지난 8일 처음 열린 전국기후활동가대회의 주제도 기후정치였다. 이들의 기후정치는 선거연합정당을 넘어선다. 스스로 원하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찾아 나가는 과정, 사회변화를 일으킨다는 마법의 숫자인 전체 인구의 3.5%인 18만명이 기후시위에 나오게 하는 일이 국회의 몇몇 기후정치인보다 중요하다.
기후정치의 또 다른 모습은 청년 기후활동가들의 꿈에서 드러난다. 지난 몇년 기후판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청년기후긴급행동은 기후정의행진이 열리던 날, ‘생태공화국 통문’이라는 글을 공개했다. 정부와 기업의 성찰과 변화를 촉구하는 ‘행동’과 ‘활동’으로 부족함을 느낀 청년들은 정치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들이 통문(공동의 관심사를 통지하는 문서)이라는 형식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공화국의 상을 그려 보였다는 점이 신선했다.
“우리가 작별하고자 하는 구체제가 우리의 일상과 무의식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고 있다. 유해한 구조 위에 무해한 개인은 없다. … 생태공화국이란, 기후위기 시대 정치적 주체이자 생태적 존재임을 스스로 선언한 이들이 탈환할 국가의 청사진을 일컫는다.” 청년들의 주장처럼 이런 청사진을 그려보는 게 기후정치 논의의 시작이라 믿는다. 촛불혁명 뒤에 온 촛불 정부에는 믿음직한 청사진이 없었다는 너무 뼈아픈 교훈을 얻었으니 말이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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