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최후진술 "어쩌다 이렇게…자책·국민기대 못미쳐 죄송"
검찰측, 징역5년 구형·이회장측, 합병절차 적법 강조
선고, 연말 또는 내년초 이뤄질 듯…경제계 관심고조
검찰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관련 혐의에 대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날 결심공판까지 끝나면서 지난 2020년 9월 시작돼 3년 넘게 공방을 이어온 재판은 마지막 선고만을 남겨놓게 됐다.
만약 이 회장이 무죄를 선고받는다면 삼성은 경영 전반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재판부가 3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할 경우 이 회장은 구속된다. 이 경우 삼성은 총수의 부재라는 경영상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3년 이어진 재판…끝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의 결심공판을 17일 진행했다. 이날 오전 이 회장도 최후 진술을 위해 재판에 출석했다.
결심 공판은 재판부의 선고 전 마지막 단계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구형과 양형 사유를 설명했고, 변호인의 최종 변론과 피고인의 최후 진술이 진행됐다.
검찰은 지난 2014년과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혐의로 이 회장을 기소했다. 이 회장이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하고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도록 의도적으로 제일모직 주가를 올리고 삼성물산의 주가를 낮췄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다.
이 회장은 합병 전 제일모직 지분을 23.2% 보유하고 있었지만, 삼성물산의 지분은 없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한 핵심 계열사다. 검찰은 삼성이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하고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조직적으로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합병비율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였다. 검찰은 해당 비율이 이 회장과 미래전략실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낮춘 상태에서 산정됐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합병이 삼성물산에 불리했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산 4조5000억원을 분식회계했다는 혐의도 제기했다.
이날 검찰은 이 회장에게 징역 5년,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그룹 총수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한 사건이며, 그 과정에서 각종 위법행위가 동원된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피고인 이재용이 범행을 부인하는 점, 최종의사결정권자였던 점, 실질적 이익이 귀속된 점 등을 고려해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재용 회장 "합병과정서 개인이익 염두한 적 단 한번도 없다"
이 회장 측은 모든 합병 절차는 주주이익을 고려해 적법하게 이뤄졌으며, 분식 회계 논란 역시 위법 행위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실제 하락세를 지속하던 삼성물산 주가가 합병 이후 급등한 것을 제시하며 합병이 삼성물산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합병 이후 영업이익이 늘고 부채비율이 줄면서 삼성물산의 신용등급이 두 단계 상승한 점도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됐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측 변호인은 "만약 합병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해외 건설 사업 의존도가 높은 삼성물산은 해외 건설업 경기 악화, 국제유가 인상 등 악재가 겹치면서 주가가 하락했을 것"이라며 "합병 당시 삼성물산 3조원의 손실을 반영했는데, 만약 합병을 하지 않았다면 삼성물산의 재무체력으론 이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합병 당시 재무정보는 물론 지배구조 관련 사항까지 공개돼 있었고, 증권신고서에도 합병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공개돼 있었기 때문에 주주들에게 제대로된 합병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은 맞지 않는 논리"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오늘까지 총 106차례의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합병과 로직스의 회계 처리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과 목소리들을 보다 세밀하게 보고 들을 수 있었다"면서 "어쩌다 일이 이렇게 엉클어져버렸을까 하는 자책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와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수준은 높고 엄격한데 미처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절감한다"며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이 회장은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온전히 경영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했다. 여기에 더해 다른 피고인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협력회사, 임직원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제 목표인데, 두 회사의 합병도 이런 흐름 속에서 추진됐던 것"이라며 "이 합병 과정에서 개인의 이익을 염두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사건에 대해 법의 잣대로 책임을 물어야 할 잘못이 있다면 제가 감당해야 할 문제다"라며 "평생 회사를 위해 헌신해 온 다른 피고인들은 선처해 주시기 바란다"며 최후 진술을 마무리지었다.
'사법리스크' 털고 삼성 반등 속도 낼까
삼성물산 합병 관련 재판은 이 회장 사법리스크의 마지막 단계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확정받은 후 지난해 7월 형기가 끝났다. 당시 받았던 5년간의 취업제한 조치도 지난해 8월 정부가 특별사면하면서 이 회장은 경영 활동에 복귀했다. 복권 이후 이 회장은 삼성물산 합병 관련 재판에만 출석해왔다.
삼성 입장에선 이 회장의 무죄 판결이 최상의 결과다. 이 회장은 부회장 시절부터 매주 1~2회 법원에 출석했던 탓에 해외 출장도 재판 일정을 고려해 짧게 계획하는 등 경영상 차질이 불가피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는다면 내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16년 10월 삼성전자 등기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이사회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2019년 10월 임기 만료로 물러났고, 지금까지 사내이사로 선임되지 못했다.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재판부가 검찰의 구형대로 징역 5년형을 선고해 이 회장이 구속된다면 삼성은 총수의 부재라는 치명상을 입게 될 전망이다.
징역형이라고 무조건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이 만약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면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형법은 3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범행 후 정황 등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형의 집행을 일정 기간 미룰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즉시 구속은 피할 수 있어 총수의 구속으로 삼성이 경영상 위기를 맞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다.
이 회장의 유무죄를 가를 쟁점은 합병 과정에서 주가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 불법이 있었는지 여부, 이 회장이 합병 과정을 직접 지시하고 보고받았는지 여부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고는 올해 말이나 내년 1월 정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결심공판 이후 선고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달 정도다. 하지만 이번 재판은 법정에 선 증인이 80명 이상이고, 검찰의 수사 기록만 19만 페이지가 넘는 만큼 시일이 더 소요될 예정이다.
김민성 (mnsu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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