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년 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배상 판결, 만시지탄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재판 6년 만에 사필귀정으로 매듭지어진 것이나, 만시지탄이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은 17일 배우 문성근씨·방송인 김미화씨 등 36명이 제기한 손배 소송에서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이 공동해 각 원고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적용이 민주주의 근간을 허무는 범죄라는 점에서,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 배상은 당연한 일이다. 재판부는 문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청구는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했지만, 당시 대통령 등에게 배상 책임을 물음으로써 사실상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블랙리스트를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규정했다. 이번 판결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과거 블랙리스트 연루 의혹도 더욱 분명해졌다. 원고들은 2017년 소송 제기 당시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유 장관을 피고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유 장관의 이명박 정부 재임 시절인 2008~2011년 문화예술인들이 광범위하게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검찰은 2018년 1월 원 전 원장 등을 기소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연예인들의 신상정보와 주요 행적을 수집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 장관은 지금껏 블랙리스트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유 장관은 “블랙리스트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망령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웃자고 그린 고등학생의 ‘윤석열차’ 만화에 문체부가 정색하고 비판을 하고, 해당 작품에 금상을 수여한 기관은 국고보조금이 삭감됐다. 지난 6월 김건희 여사가 참석한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는 예술인들이 강제로 끌려나오는 일이 일어났다.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소설가 오정희씨를 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선정한 데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이유였다. 문화예술인 탄압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예술의 자유 등을 유린하는 중대범죄다. 유 장관은 지금이라도 블랙리스트 연루 의혹에 관해 사과하고, 사상과 정치적 이념을 잣대로 문화예술인을 평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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