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포항 배상 판결

이명희 기자 2023. 11. 1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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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은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 공동대표를 비롯해 범대본 관계자들이 16일 대구지법 포항지원 앞에서 지진피해 소송 승소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딱 이맘때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017년 11월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 관측 사상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이었다. 1명이 사망했고 117명이 다쳤다. 특히 수능 하루 전날 발생해 시험이 일주일 뒤로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져 전국적 혼란을 가져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듬해 2월에도 규모 4.6 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가 이어졌다.

당시 지진 전문가들은 진앙 인근에 짓고 있던 포항지열발전소에 주목해 인공지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부는 1년간 조사 끝에 2019년 3월 “포항지열발전사업에서 지하공간에 과도하게 물을 주입하면서 지진이 촉발됐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포항시민들은 시민단체와 공동소송단 등을 통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재판 도중 피해 구제·지원 방안 등을 담은 ‘포항지진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2021년 4월 시행에 들어갔지만 소송을 취하한 시민은 거의 없었다. 긴 법정 다툼 끝에 16일 법원은 시민들 손을 들어줬다. 2019년 8월26일 첫 재판이 열린 지 4년여 만이고, 포항지진 발생 후 6년 하고도 하루 지난 날이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민사1부는 “지열발전사업과 지진의 인과관계를 토대로 지열발전에 따라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해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며 “1인당 최대 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포항지진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법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사회 인프라를 만들고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국가 책무를 강조한 의미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보자. 포항지열발전소는 2010년 말 시작됐다. 그후 2017년 4월 인근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다. 산업부는 이를 알고도 지진 위험도 분석을 하지 않았다. 공기관이 위험 징후를 예삿일로 넘기고, 문제점을 바로잡지 않는 무책임의 끝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지진 피해 주민들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판결이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국가의 첫 번째 책무는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 당연한 말을 다시 묻는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친 국가는 왜 달라지지 않는가.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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