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자궁이식 성공…희소질환 여성, 임신의 꿈 가까워진다

이지현 2023. 11. 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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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기자의 생생헬스
삼성서울병원, 재도전 끝 성공
자궁 없이 태어난 35세 여성에
작년 자궁이식 실패했지만
올해 뇌사자 기증받아 성공
동맥 정교하게 연결해 자궁 안착
첫 월경후 규칙적 생리주기 유지
임신 위해 시험관 아기 시술 중
'MRKH 증후군' 환자에 새 희망
해외선 이미 109건 수술 진행
박재범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왼쪽)가 국내 첫 자궁이식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국내 첫 자궁이식 사례가 보고됐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이 마이어로키탄스키쿠스터하우저(MRKH) 증후군으로 자궁 없이 태어난 35세 여성 A씨에게 뇌사자의 자궁을 이식하는 데 성공하면서다. A씨는 임신을 위해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고 있다.

○국내 첫 자궁이식, 임신 시도 중

삼성서울병원은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팀이 17일 대한이식학회 추계국제학술대회에서 국내 첫 자궁이식 성공 사례를 보고했다고 밝혔다. 올 1월 수술을 받은 A씨는 MRKH 증후군을 앓고 있던 환자다. 태어날 때부터 자궁과 질이 발달하지 않는 질환이다. 이 질환은 여성 50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MRKH 증후군 환자는 청소년기에 생리가 시작되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사례가 많다. 난소는 정상 기능을 하기 때문에 호르몬 등엔 영향이 없다. 배란도 가능하다. 자궁만 이식받은 뒤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임신과 출산도 할 수 있다.

이런 환자에게 자궁이식이 처음 시도된 것은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다. 만 26세 여성에게 자궁을 이식했지만 면역 거부 반응 탓에 100일 만에 이식한 자궁을 다시 떼어내야 했다. 세계 첫 실패 사례다. 2011년 튀르키예에서도 21세 여성에게 자궁을 이식하는 수술이 이뤄졌다. 6년간 거부 반응 없이 기능이 잘 유지됐지만 임신은 하지 못했다.

세계 처음으로 자궁이식 후 임신까지 성공한 사례가 보고된 것은 2014년이다. 당시 스웨덴에서 35세 여성이 자궁을 이식받은 뒤 출산까지 성공했다. 스웨덴에선 2016년 자궁이식 후 두 번째 출산 사례도 보고됐다.

임신 출산 사례가 보고된 뒤 수술은 급증했다. 9월 국제자궁이식학회에선 세계 19개국 27개 센터에서 109건의 자궁이식수술이 진행돼 66명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분석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베일러대학병원은 2016~2019년 20명에게 자궁이식을 시도해 14명이 성공했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이 중 11명(79%)은 출산까지 마쳤다. 중국도 2020년 22세 여성에게 자궁을 이식한 뒤 출산까지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이식 실패 후 2차 시도에서 성공

삼성서울병원이 두 번의 시도 끝에 A씨의 자궁이식수술에 성공했다. 이식에 실패한 환자가 재도전해 성공한 것은 세계 처음이라고 병원 측은 밝혔다. A씨는 2021년 결혼 후 임신을 결심하고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첫 수술은 지난해 7월 시행됐다. 폐경을 맞은 어머니의 자궁을 떼어 이식했지만 혈액이 돌지 않아 2주 만에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두 번째 이식수술은 올 1월 이뤄졌다. 자궁을 공여할 수 있는 40대 뇌사자가 발생했고 보호자 동의를 받아 이식이 결정됐다. 자궁이식 수술에 성공하려면 난소, 엉덩이뼈 쪽에 있는 동맥 2개와 정맥 3개를 정교하게 이어줘야 한다. 의료진은 기증자의 장기 적출 수술 때부터 혈관이 다치지 않도록 수술에 공을 들였다.

수술 후 29일 만에 A씨는 생애 첫 월경을 했다. 자궁이 안착했다는 신호다. 이후 생리주기는 규칙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식 후 정기적으로 시행한 조직검사에서 거부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식한 자궁이 환자 몸에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무사히 자궁이 안착해 아기를 맞이할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자궁이식 다음 단계는 임신이다. 이동윤·김성은 산부인과 교수팀은 수술 전 A씨에게서 미리 채취한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수정시킨 배아를 착상시키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하고 있다. 신장 등 다른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의 출산 경험을 살려 무사히 아이를 낳도록 돕는 게 목표다.

○제도 미비·높은 시술 비용 한계

삼성서울병원은 두 번째 자궁이식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수술 사례가 늘면 A씨처럼 MRKH 증후군 때문에 출산을 포기한 여성에겐 새 희망이 생길 것이란 평가다. 최근 10년간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MRKH 환자는 30명, 국내 전체 환자는 90명 정도로 보고된다. 다른 자궁 질환 때문에 젊을 때 자궁을 절제한 환자까지 포함하면 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더 많을 것이라고 의료계에선 내다봤다.

자궁이식 대신 대리모를 선택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법적으로 불완전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판례상 부부의 정자와 난자로 만든 수정체를 다른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킨 대리모 계약을 무효로 보고 있어서다. 박 교수는 “‘의학적으로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며 “환자들이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수술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궁은 이식 가능한 장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제도적 한계 탓에 이번 이식수술은 법적 자문을 거쳐 보건복지부 검토,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 등을 받아 진행됐다. 건강보험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수술은 임상연구 방식으로 이뤄졌다. 1억원에 이르는 수술비용은 삼성서울병원 미래의학연구소를 통해 모금한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작진도 연구비 기부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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