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 '대박' 쳤지만 후속작은 '시들'
[이유정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지난 10월 국경절 연휴기간에 중국에서 다시 한번 한국전쟁을 소재로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영화가 제작·개봉되었다. 2021년 중국공산당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장진호>(長津湖)를 상영하여 흥행한 이후 2022년 <장진호의 수문교>(長津湖之水門橋), 2023년 <지원군:웅병출격>(志願軍:雄兵出擊) 등 3년 연속 연휴기간에 한국전쟁 관련 영화가 개봉됐다.
세편의 영화 모두 <패왕별희>의 감독으로 유명한 천카이거(陳凱歌)의 작품이다. 또한 이들 모두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국가영화국(國家電影局)이 제작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국가영화국은 어떻게 영화의 제작 과정에 영향을 미칠까?
중국공산당과 영화 상영의 승인 과정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난 2018년 3월 21일 '당과 국가 기구 개혁 심화 방안'(深化黨和國家機構改革方案, 이하 방안)을 발표하여 국가 기구가 담당하던 영화, 신문, 출판 업무를 당 중앙선전부로 이관한 바 있다.
이 방안이 명시한 개혁은 영화 관련 업무에 대한 당 중앙선전부의 통합 관리를 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방안의 발표보다 앞서 2017년 3월 공포(公布)·시행한 '영화산업진흥법'(電影產業促進法)에 따르면, 영화의 제작, 수입, 그리고 상영의 모든 과정에서 국무원 영화 행정부서 또는 관련 지방 정부 부서가 영화 대본의 개요 또는 대본 전부를 심사·승인해야 하고, 촬영이 완성된 이후에는 상영 허가 심사와 영화상영허가증을 발급해야 한다.
특히 민감한 주제로 분류되는 국가 안보, 외교, 민족, 종교, 군사 등의 영화 대본은 개요가 아닌 모든 내용이 심사 대상이다.
이후 위원회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들 업무를 관리하던 국무원 산하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全國新聞出版廣電總局)의 역할을 분야별로 분리하여 당 중앙선전부가 관리하도록 기구 개혁을 진행했다.
영화 부분의 관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당 중앙선전부 산하에 국가영화국이 생겼으며, 국가영화국이 영화 행정업무 관리를 비롯하여 제작·배급·상영, 수출입과 대외합작 영화의 공동제작 및 협력 등의 과정에서 규제 및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이 개혁에 대해 "원래 중국의 모든 미디어 콘텐츠 이데올로기를 책임지고 '금지령'과 문화 선전 지시를 잘 내리는 중앙선전부가 대외적으로 국가영화국 간판을 내걸고 직접 영화 심사를 시작했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영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통제가 더 엄격해질 것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동 신문이 진행한 영화 산업 관계자들에 대한 인터뷰에 따르면 방안이 발표된 이후 이들은 검열이 확실히 더 엄격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여러 단계에 걸친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사전에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열의 기준이 모호하여 많은 영화들이 촬영허가나 상영허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미 공화당의 한 하원의원에 따르면 심지어 미국의 영화 산업도 중국 시장에 진출할 목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사전에 자기 검열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 선전부의 한국전쟁 영화 제작
엄격한 당국의 검열과 자기 검열이라는 환경에서, BBC코리아에 의하면 최근 몇 년간 중국 정부는 민족주의 영화들을 제작할 것을 의뢰하였다고 한다.
이는 상기한 방안이 명시한 목적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기능을 당으로 이관하는 주요 목적은 영화의 기능을 활용하여 당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당을 선전하는 역할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중국 인민대 마더용(馬得勇) 교수가 주장하듯이 영화나 신문기사, TV 드라마가 설정한 프레임은 대중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필자가 이전에 출판한 글에서도 인용한 바와 같이 마더용 교수는 2018년 약 2763명 이상의 중국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언론 보도와 중국 대중의 대미(對美) 인식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참가자들은 미중 무역전쟁 관련 신문기사를 읽었는데, 신문을 읽기 전후 미국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 기사를 읽은 참가자들은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감소하고 미국에 대하여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반면 중국의 중앙 정부를 정치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증가함을 보여줬다.
이는 중국에서 제작된 한국전쟁 관련 영화들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쳐 당에 대한 신뢰가 증가하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미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형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중앙선전부는 한국전쟁 관련 영화의 제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2020년 이후 제작된 한국전쟁 관련 영화들은 <나의전쟁>(我的戰爭), <금강천>(金剛川), <보가위국-항미원조광영기실>(保家衛國—抗美援朝光影紀實), <장진호>, <저격수>(狙擊手), <장진호의 수문교>, <지원군: 병출격> 등이다. 이 가운데 <저격수>를 제외한 나머지 6편의 제작사는 중국영화주식유한공사(中國電影股份有限公司)이다. 이 기업은 상장되어있는 국영기업이자 중앙선전부의 부속기관이다.
따라서 중앙선전부가 심사와 상영에 영향을 미쳤던 다른 영화와 달리, 중국의 한국전쟁과 관련한 대부분의 영화들은 중앙선전부가 중국영화주식유한공사와 함께 영화 제작을 추진한 것으로 봐야 한다.
중국공산당 선전부의 성과
방안이 제시하는 또 다른 목적은 중앙선전부가 영화산업을 포함한 문화 관련 기업들의 정치적 역할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영화 사업을 통한 경제적 이익 역시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당-정이 발표한 '국유문화기업발전보고서(國有文化企業發展報告)' 문건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보고서는 문화를 콘텐츠로 하는 국유기업의 주요 목적은 사회적 이익이지만 이와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기업의 적자를 보고 및 관리하고, 임직원의 평가와 급여 구조를 연계시키고, 지배 구조의 구조조정을 완료하는 등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영화주식유한공사도 이 '국유문화기업발전보고서'에서 포함하여 관리하는 기업들 중 하나이며 정치적 역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 창출이 평가 대상인 기업이다.
이 회사에서 제작하고 2015년 개봉한 항일운동영화인 <백단대전>(百團大戰)의 흥행 수익에 대해 조작 논란이 있던 반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장진호>, <장진호 수문교>는 역대급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현재까지도 <장진호>의 기록을 갱신하는 영화는 없다.
그러나 2023년 개봉한 <지원군: 웅병출격>에 대한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중국의 대중들은 민족주의 주제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전해진다. <지원군:웅병출격>은 3편에 걸친 시리즈물로 향후 2편이 더 제작될 예정이다.
<지원군: 웅병출격>의 저조한 성과는 중국이 더 이상 한국전쟁 영화를 제작하지 않는 동기가 될까? 방안에서 제시했듯이 영화 산업을 통해서 중국공산당이 추구하는 당의 선전 강화와 경제적 이익추구에서 당 중앙선전부는 어떠한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유정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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