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家 세모녀 '경영 참여' 의도로 소송 제기했나

장하나 2023. 11. 1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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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치매·구본무 금고 소환에 "선 넘었다"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LG가(家)의 상속 소송 재판 과정에서 이번 소송을 제기한 세 모녀 측의 '경영권 참여' 의도가 드러나는 등 LG가의 법정 공방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법정에서 가족 간 녹취록이 처음 공개된 가운데 그간 재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고(故)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치매 병력까지 소환되며 재계 일각에서는 "선을 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 [연합뉴스 자료사진]

17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2차 변론기일에서는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구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고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등의 대화를 녹음한 내용이 공개됐다.

이는 작년 세 모녀가 소송 제기에 앞서 상속 분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던 시점에 녹음한 것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여사는 "우리가 지분을 찾아오지 않는 이상 주주간담회에 낄 수 없다. 연경이가 아빠(고 구본무 선대회장) 닮아서 전문적으로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연경이나 내가 자신 있게 잘 할 수 있다. 다시 지분을 좀 받고 싶다.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의도가 사실상 경영 참여임을 밝힌 셈이다.

앞서 작년 소송 당시 세 모녀 측은 "구 회장이 (㈜LG 주식을) 모두 상속받는다는 유언장이 있는 것으로 속았다"며 "(소송이) 경영권 분쟁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으나, 이에 앞서 이미 가족 간 대화 당시에는 경영권 참여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전까지는 유언장 존재 여부를 두고 양측이 공방을 벌였으나, 녹취록을 통해 세 모녀가 가족 간 상속 합의를 인정했다가 이를 번복하려는 정황도 드러났다.

김 여사는 "내가 (구광모 회장에게) 주식을 확실히 준다고 했다"며 가족 간 합의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고, 구연경 대표는 "아빠(구 선대회장)의 유지와 상관없이 분할 합의는 리셋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합의 번복 의사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에는 증인으로 출석한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 외에 '대화자'로 구연경 대표의 남편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도 등장한다.

소송 제기 당시 재계 일각에서 윤 대표가 이번 소송에 깊게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만큼 향후 재판 과정에서 윤 대표의 소송 개입 여부 등이 밝혀질지도 관전 포인트다.

2012년 열린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미수연(米壽宴·88세)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한편, 재계에서는 LG가의 전통인 '장자 승계 원칙'과 또 다른 유언장 존재 가능성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가족 내부의 비밀이 법률대리인의 입을 통해 알려지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재판에서 원고 측은 하 사장에게 "구자경 명예회장이 치매 때문에 언제부터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됐냐"고 따져 물으며 LG가의 암묵적 비밀이었던 구 명예회장의 치매 병력을 끄집어냈다.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2018년 아들인 구본무 선대회장의 별세 당시 치매로 요양 중이어서 가족들이 구 선대회장의 별세를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고 측이 구 명예회장의 '장자 승계 원칙'과 보유 주식 상속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법정에서 고인의 치매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힌 셈이다.

이에 대해 하 사장은 "'구광모가 장차 회장이 돼야 한다. 충분한 지분을 가져야 한다. 내 지분은 장자에게 가야 한다'는 취지로 늘 말씀하셨다"며 "다른 자녀들도 아무 반발 없이 합의했고, 이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오랜 뜻이 관철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명예회장이 보유했던 ㈜LG 주식 164만8천887주(0.96%)는 구 명예회장 별세 후인 2020년 6월 구광모 회장이 상속받았다.

구 선대회장의 유언장 존재 여부 등을 캐묻는 과정에서도 고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만한 상황이 연출됐다.

원고 측은 구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구 선대회장의 금고를 연 사실을 언급하며 금고 속 물품에 대해 물었다. 이에 하 사장은 "개인적인 건데 중요한 것은 아니어서 법정에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으나, 원고 측이 거듭 공개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지켜보던 재판장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라며 저지하기도 했다.

이 밖에 원고 측이 "곤지암은 (구 선대회장이) 별장처럼 이용한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언급해 하 사장이 "이는 망인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라며 "곤지암은 철저하게 공적으로 사용했다. 해외에서 회장들이 오거나 국내에서 중요한 분들과 대화하실 때 사용한 공간이고 공간 자체가 회사 재산"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굳이 치매 병력이나 금고 내 개인 물품까지 공개된 법정에서 얘기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라며 "자칫 소송의 본질이 흐려지고 가십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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