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다반사(茶飯事)가 곧 도(道)다

2023. 11. 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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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중에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스님과의 차담'이다.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에 알아차림이 중심인 불교수행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천천히 차를 마시면서 그 맛과 향과 느낌을 분명하게 통찰하는 것 자체가 수행이다.

새벽에 기도하고 아침공양을 마치면 어김없이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같이 사는 스님들과 함께하기도 하지만 혼자서 차를 마시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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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수행에 어울리는 잔재미
천천히 차 맛·향을 통찰하는 것
고급스러운 차 애써 찾지 않아도
벗과 즐겁게 담소 나눌 때면
도는 일상 속 작은 깨달음일 뿐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중에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스님과의 차담'이다. 사찰에서 차를 마시는 것은 곧 수행이다.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에 알아차림이 중심인 불교수행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천천히 차를 마시면서 그 맛과 향과 느낌을 분명하게 통찰하는 것 자체가 수행이다.

출가를 위해 해인사 강주(講主)스님께 인사할 때의 일이 생각난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출가하면 세상 사는 잔재미는 없어집니다. 그래도 괜찮겠죠?" 오랜 세월 수십 번을 망설이다 굳게 결심했기 때문에 잔재미쯤은 당연히 포기해도 좋았다. 그런데 막상 출가하고 보니 수행자에게 꼭 어울리는 잔재미가 있었다. 바로 차 마시는 것이었다.

새벽에 기도하고 아침공양을 마치면 어김없이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같이 사는 스님들과 함께하기도 하지만 혼자서 차를 마시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 혼자가 아니다. 차를 마실 때마다 까치가 창밖의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귀뚜라미와 더불어 이름을 모르는 벌레들이 합창해준다. 햇살이 슬금슬금 다가와서 맞은편 좌복에 앉거나 찻잔에 살며시 입술을 댄다. 아침마다 나와 함께 차를 마시는 새와 곤충과 나무와 햇살과 바람. 일일이 챙기기 힘들지만 그들은 내가 챙겨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반사라는 말이 있다. 중국은 물이 좋지 않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맹물을 그냥 마실 수 없어 늘 차를 마셨다. 중국인들에게는 차를 마시는 것이 밥 먹는 것보다 더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처럼 '늘 예사로 있는 보통 일'이라는 뜻에서 다반사(茶飯事) 또는 항다반사(恒茶飯事)라는 말이 생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를 자주 마시지 않는다는 점에서 '늘 예사로 있는 보통 일'이라는 의미의 다반사라는 말은 우리나라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선승들에게는 차가 일상이었다.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까?"라는 한 수행자의 질문에 선사는 "새벽에는 한 국자의 죽/ 점심에는 한 그릇의 밥/ 갈증에는 석 잔의 차 마시면 그뿐/ 깨닫거나 말거나 관여치 않는다오"라고 대답한다. 얼마나 간명한가. 마조도일(馬祖道一)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이보다 더 쉽고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봉암사 태고선원의 다각실은 수좌(首座)들의 열띤 토론장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선원의 다각실에서 커피도 제법 자주 마신다. 커피도 머리를 맑게 해주기 때문에 선승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그러나 시간이 넉넉할 때 열띤 토론을 벌이기에는 많은 양을 마셔도 괜찮은 차가 더 낫다. 차를 자주 마시다 보면 입이 고급스러워져서 점점 좋은 차를 찾게 된다.

나는 마실 때는 차가 좋니 좋지 않니 하면서도 좋은 차를 애써 찾지는 않는다. 봉선사 현진스님이 차를 한 봉지 가져왔다. "내가 마시던 것인데, 맛이 좋아서 좀 가져왔습니다." 한 모금 마셔보니 늙은 차나무에서 딴 그 향이다. 한 잔 한 잔 거듭 마실수록 깊고도 맑고, 무겁지 않고 경쾌한 맛이다. 문득 범해각안(梵海覺岸)의 '만일암(挽日庵)'을 떠올린다. "높은 벗 찾아와 안거를 함께하니/ 사는 일이 비로소 달콤하구나!(高朋來結夏 活計最初甘)."

출가 전엔 친구들을 만나면 차를 마시는 것이 아까워 밥과 함께 못 마시는 술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찻집에 갈 필요도 없이 최고의 차가 내게 있다. 가끔 벗이 찾아와 차 한잔 같이한다면 이보다 더 쏠쏠한 잔재미는 없다. 아니다. 차 한잔 마시면서 좋은 벗과 즐겁게 담소 나누는 것은 단순히 잔재미가 아니다. 다반사(茶飯事)가 곧 도(道)다!

[동명 스님 잠실 불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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