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은의 컴파일] 수능날의 요란함

김대은 기자(dan@mk.co.kr) 2023. 11. 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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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1년 중 가장 요란한 행사를 꼽자면 단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들 수 있겠다.

학력고사의 획일성을 타파하겠다는 도입 목적과는 달리 수능은 오랜 기간 수험생들을 줄 세울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준처럼 기능해왔다.

미래에는 지금과 같은 수능날의 요란한 모습을 '응답하라 20××' 속 넷플릭스 드라마로 추억하며 보는 날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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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1년 중 가장 요란한 행사를 꼽자면 단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들 수 있겠다. 17~18세 남짓한 수험생들을 위해 온 나라가 힘을 합치기 때문이다.

이날은 주관 부처인 교육부는 물론이고 국방부·경찰청 등 정부 기관과 한국거래소·은행연합회 등 경제 관련 기관도 엄청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경찰차는 수험생 전용 택시처럼 바뀌는가 하면, 혹여나 시험장에 가는 길이 방해가 될까 관공서와 은행은 물론이고 증권시장까지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여닫는다. 늘 출근 때마다 미어터지는 지하철도 이날만큼은 특별 증차가 시행된다. 심지어 영어 듣기 평가가 진행되는 오후 1시를 전후로는 비행기 이착륙이 통제되고 군사훈련도 진행하지 않는다.

이토록 온 나라가 수능을 우대하는 데에는 결국 수능의 공정성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학력고사의 획일성을 타파하겠다는 도입 목적과는 달리 수능은 오랜 기간 수험생들을 줄 세울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준처럼 기능해왔다. 선택과목을 도입하고, 원점수가 아닌 표준점수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능 만점자에 대한 비정상적인 관심이 쏟아지곤 했으며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 의대에 불합격하다니 입시가 불공정하다"는 말까지 나온 적도 있었다.

수능이 이토록 특별 대우를 받는 또 하나의 까닭은 입시가 일종의 계층이동 수단으로 쓰이는 사회 현실과도 관련이 깊다. 어떻게든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이후 삶이 대체로 보장되는 편이다. 대학 성적이 아무리 미천하더라도 졸업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고, 이후 적당한 기업에 들어가 평균 이상의 삶을 사는 데에도 큰 문제가 없다. 그래서인지 그 첫 단추가 되는 대학 입시 과정에 대통령까지 개입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의 지시를 내놓을 정도로 수능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입시제도에서 수능 자체 역할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한때 80만명을 넘겼던 수능 응시자 수는 이제 그 절반인 40만명대에 불과하다. 대학이 수능 성적 위주로 학생을 뽑는 정시 비율이 30%를 밑돈 지 오래인 관계로 수험생들 사이에 '수시는 고3, 정시는 재수생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개 수시모집에서는 논술·자기소개서 점수가 중요하고 수능은 대체로 최저학력 기준을 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만 사용되는데, 심지어 서울대는 전체 입학생의 절반가량을 모집하는 '일반전형'에서 아예 수능 성적 자체를 보지 않는다.

또 요즘 초등학생을 상대로 장래 희망을 조사하면 변호사·의사보다 '유튜버'가 순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때 대학에서는 정시 출신을 우대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워낙 그 숫자가 적어 그렇지도 않다.

무엇보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할 학생 숫자가 저출산 속에 팍팍 줄어드는 현실을 감안하면 치열한 경쟁에서 따냈던 대학 간판의 의미 자체가 퇴색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 같다. 미래에는 지금과 같은 수능날의 요란한 모습을 '응답하라 20××' 속 넷플릭스 드라마로 추억하며 보는 날도 있을 것 같다.

[김대은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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