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삶이란 관계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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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에만 해도, 나는 삶에서 인연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야말로 '인연'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산소가 산불을 일으킨다고 하여 산소 없이 살아갈 수는 없듯이, 결국 삶은 사람이라는 산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부모라는 타인에게서 시작되었듯,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삶을 시작하며, 또한 타인에게로 부단히 나아가는 여정을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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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에 집착않고 쿨한 척만
글쓰기도 결국 사람과의 연결
20대 시절에만 해도, 나는 삶에서 인연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인연이란 살아가면서 부단히 변화하고 달라져 가는 것이다. 붙잡는다고 해서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막지 않는 것'이 가장 쿨하고 좋은 태도라 생각했다. 오히려 그때는 오직 나의 지식과 능력만이 중요하다고 믿어서 지식을 쌓고 글쓰기를 연마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생각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직접적인 인연뿐만 아니라 글쓰기나 지식조차도 결국 다 사람의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요즘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야말로 '인연'이 아닌가 생각한다. 글쓰기만 하더라도, 글쓰기는 사람 없는 우주의 허공에다가 천재적인 기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란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람과 연결되는 일일 뿐이다. 그 외에 별도의 대단한 외계의 법칙 같은 게 있는 건 아닌 것이다. 누군가를 대리하거나 변호하는 일도, 그 밖의 모든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사람은 그저 사람을 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 바깥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 사람 안에 있는 일이라고 느끼곤 한다. 삶이라는 건 거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싶다. 내가 가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 내가 호의를 건네고 싶은 사람, 내가 믿고 싶은 사람, 나를 신뢰해주는 사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의 여정을 빼면 과연 삶이라는 게 존재할 수나 있을까?
흔히 사회에서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도 거의 열에 아홉은 사람과 관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타인을 이해시키는 능력,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능력, 타인에게 신뢰를 주는 능력, 타인을 만족시키는 능력, 타인의 마음을 알고 협상하는 능력 바깥에 '별개의 능력'이랄 게 있긴 할까? 20대 시절에만 해도, 나는 그걸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능력만 가지면 되는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안다. 최근 다니던 로펌에서 퇴사하기로 결심하고, 부지런히 변호사 개업 준비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다들 개업을 응원하고 하나씩 보탬이 되는 말들을 건네주는 걸 보면서 역시 사람이란 사람으로 사는구나 하는 걸 더욱 현실적으로 느꼈다. 홀로서기 위해 필요한 것조차 대단한 준비 자금이나 엄청난 능력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서로를 위하고 응원하며 도와줄 사람들이었다는 걸 절절히 깨달았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길 수는 없고, 오히려 삶을 파괴한다 싶은 사람들은 서둘러 걸러내야 한다. 그러나 산소가 산불을 일으킨다고 하여 산소 없이 살아갈 수는 없듯이, 결국 삶은 사람이라는 산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제대로 해야 할 일은 사람을 알고, 사람 곁으로 가는 것이다. 그 방법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할 것이다. 누군가는 글쓰기나 작곡으로, 누군가는 잦은 만남이나 모임으로, 누군가는 강연이나 방송을 통해 '사람'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다만 그 본질은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살아갈수록 그저 점점 더 알게 된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나의 하루하루의 의미를 지켜주는 가족이나, 나의 글을 읽어줄 독자들, 그리고 나를 믿고 찾아와 줄 의뢰인들이나, 서로 협력할 여러 지인과 동료 없이는 삶이 하루도 존재할 수 없다고 느낀다. 우리의 삶이 부모라는 타인에게서 시작되었듯,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삶을 시작하며, 또한 타인에게로 부단히 나아가는 여정을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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