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총선, 100석 이하가 목표여야 한다
“200석도 가능하다.” 내년 4월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무려 200석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한 정당에서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점한다는 것은 한국 정치사에 최대 사변이라고 할 수 있다. 200석을 차지한 정당은 독자적으로 개헌을 추진할 수도 있고,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다시 의결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여당 200석은 일방적, 독단적으로 국정운영을 불러올 수 있고, 야당 200석은 식물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특정 정당의 200석 확보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민심이 천지개벽을 하고, 동시에 특정 정당에 지지를 몰아줘야 가능한 숫자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집권 여당이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박정희 유신 헌법은 전체 의석 3분의 1에 해당되는 의원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고, 나머지 의석도 한 선거구에 두 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여당이 의석 3분의 2를 차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국민의 선택권을 무시한 이런 행태는 영구집권을 획책한 독재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얼마 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자 수도권 민심이 확인됐다면서 특정 정당에서는 독재시절에나 가능했던 200석 달성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기다려야 할 정당이 국민의 표심을 분석했다면서 내놓은 것. 이들의 분석을 들여다 보면, 한편으로 그럴듯하다. 각 진영 간 결속도가 높은 가운데 스윙보터의 윤석열 정권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 같다. 강서구청장 선거에 나타난 표심도 이를 확인해 줬다고 덧붙인다. 뭐, 그럴 것이다. 그러니 그걸 믿고 이대로 쭈욱~ 나아가시라. 200석의 영광이 있을지니.
역대 총선에 나타난 표심은 무엇보다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적 성격이 강했다. 이번 선거도 예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다수 야당의 횡포로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는 이번 총선을 정권 심판보다는 야당 심판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하려고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정권심판인지 야당심판인지는 앞으로 국민의 선택을 지켜봐야겠지만, 거대 양당의 이같은 프레임 전쟁이 이번 총선 판세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거대 양당에 부정적인 국민을 상대로 한 제3당의 출현도 변수로 꼽힌다.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에서 제3당이 어느 정도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변화된 선거 구도에 대한 국민의 선택이 주목된다. 특히 거대 양당의 주요 지지기반에서 민심 이탈 정도가 전체 선거 판도를 뒤흔들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변수가 있다. 그것은 오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 국민은 지나친 자신감을 보이는 정당에 늘 철퇴를 가했다. 국민을 우습게 보면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특정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200석도 가능하다는 분석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야권 입장에서는 지나친 기대보다는 차라리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의석을 100석 이하가 목표가 돼야 한다. 지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나타난 표심이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목표를 그렇게 삼아야 타당하다. 공연히 정치공학적으로 분석해 윤석열 정부를 심판한 결과가 자신들의 지지로 연결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누를 범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되레 오만하다는 국민적 심판을 자초할 수도 있다.
이제 관심은 국민의힘이 100석 이하에 그치게 되면, 나머지 200석의 향방에 쏠린다. 더불어민주당에 나머지 의석을 차지해야 한다는데 동의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심판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거대 양당 체제의 폐해는 확인된 것 아닌가. 결국 국민은 이번 총선을 통해 강고한 양당 체제를 허물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출발은 특정 정당의 의석수가 100석 이하가 되는 것이다. 특정 정당이 나머지 의석을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제3당, 제4당, 제5당을 통해 국민의 의사가 골고루 나누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동안 양당 체제는 국민 여론만 극단적으로 갈리게 했다. 중간지대가 존재할 수가 없었다.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 되는 정치풍토를 만들었다. 적대적 공생관계는 기존 양당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자양분이 됐다. 희망사항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번 총선은 양당 체제에 파열음을 내고, 한국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창출되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색깔의 정당이 다수 출현할 수도 있다. 내년 총선을 계기로 진보, 개혁보수, 중도 등 다양한 정당들이 의석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물론 이렇게 되면 더 시끄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얽히고 설키다 보면, 타협도 하고 공동정부도 구성할 수 있고, 때로는 야합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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