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 양편에서 들려온 증언···전쟁이 나고 말았다[그림책]

이영경 기자 2023. 11. 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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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고 말았다>에 나오는 삽화. 우크라이나에서 죽은 러시아인들의 시체가 수백구씩 보관된 모습. 러시아는 이들의 시신을 운반하지 않았다. 엘리 제공

전쟁이 나고 말았다

노라 크루크 지음 | 장한라 옮김|엘리|132쪽|2만1000원

폭탄과 파괴된 도시, 사망한 사람들에 관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다만 장소가 바뀌었을 뿐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불러온 새로운 파괴와 살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소식을 대신했다. 전쟁이 다른 전쟁으로 잊힌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전쟁은 현실이다.

<전쟁이 나고 말았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어떻게 삶을 비트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2018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작 <나는 독일인입니다>를 통해 전쟁과 역사, 죄의식에 대한 성찰을 그래픽 서사로 구현한 노라 크루크는 이웃 나라에서 발발한 전쟁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다. 지인인 우크라이나 기자 K와 러시아 예술가 D에게 연락을 취했해 안부를 물었고, 두 사람과 주고받은 52주간의 연락을 바탕으로 일러스트를 그려 그래픽 논픽션을 만들었다.

<전쟁이 나고 말았다>의 삽화. 우크라이나 기자 K는 최전방에서 전쟁을 취재한다. 기자들에게는 방탄조끼와 헬멧 등 보호장비가 지급됐다. 엘리 제공

K는 소비에트 연방 시기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성장해 기자가 됐다. 러시아 국적을 포기하고 우크라이나 국적을 취득한 뒤 전쟁이 발발하자 최전방에서 전쟁을 취재하고 동료들을 돕는다. D는 푸틴 체제에 반대하며 전쟁이 발발하자 수치심을 느낀다. 자신이 먼저 외국으로 이민을 간 뒤, 가족을 데려올 계획을 세운다.

K와 D가 경험하는 전쟁은 당연히도 몹시 다르다. K가 폭탄이 떨어지거나 친구와 동료들이 납치되거나 죽을까봐 두려움에 떤다면, D는 전쟁 때문에 고국을 사랑할 수 없게 됐으며 감정의 마비와 무기력함을 느낀다. D는 이 책을 통해 푸틴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위험을 감수했다.

<전쟁이 나고 말았다>의 삽화. 러시아 예술가 D는 푸틴을 비판하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서 산다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비에 젖어 걸레짝 같아진 러시아 국기를 보며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는 상징같다고 말한다. 엘리 제공

저자는 K와 D의 이야기를 양 페이지에 병렬적으로 보여줄 뿐 어떤 화해나 연결을 시도하지 않는다. “전쟁으로 인해 국경 양쪽에 생겨난 두 서사의 냉혹한 대비를 기록하고, D와 K의 다면적 정체성과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 공통되는 것은 이산이다. K는 아이들을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보낸 뒤 코펜하겐과 우크라이나 최전방을 오가는 삶을 이어간다. D는 외국으로 홀로 먼저 떠나며 “이 모든 것들이 조국과 가족을 떠나올 마땅한 이유인지” 의문을 갖는다. 전쟁은 가족과의 이별을 불러오고, 삶의 터전을 떠나게 만든다.

저자는 개인들의 경험이 “진실을 미묘하고도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고 말한다. 완전히 객관적이거나 정치적인 상황을 조망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지만, 진실이 지닌 다양한 면면에 빛을 드리운다는 것이다. D와 K의 이야기가 바로 그러하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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