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달려들었다 해도 사자 잘못은 아니죠. 사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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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에서 시드니 폴락 감독의 1985년작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봤다.
이 오페라는 웅혼한 기상을 가진 천재적인 여인 카렌이 기획자이고, 주인공 데니스, 원주민들 그리고 사자·기린 등 수많은 생명체가 출연진이다.
둘이 초원을 걸을 때 사자가 나타난다.
카렌은 기겁을 하지만 데니스는 차분하게 사자의 행동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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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블릭센 (1885~1962)
최근 TV에서 시드니 폴락 감독의 1985년작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봤다. 명작이었다. 그해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도 영화지만 카렌 블릭센이 쓴 원작 소설은 압권이다.
이 작품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이 주인공이 아니다. 물론 여주인공 카렌과 남자 주인공 데니스가 작품을 이끌어가기는 하지만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체다.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의 로맨스라기보다는 '아프리카'를 주제로 한 오페라다. 이 오페라는 웅혼한 기상을 가진 천재적인 여인 카렌이 기획자이고, 주인공 데니스, 원주민들 그리고 사자·기린 등 수많은 생명체가 출연진이다. 카렌은 멋지다. 그녀는 이렇게 데니스에게 외친다.
"자, 우리 쓸데없이 목숨 걸러 가요. 목숨에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게, 바로 우리 목숨이 지닌 가치니까요."
데니스는 한술 더 뜬다. 이런 장면이 있다. 둘이 초원을 걸을 때 사자가 나타난다. 카렌은 기겁을 하지만 데니스는 차분하게 사자의 행동을 지켜본다. 겁에 질린 카렌이 사자를 총으로 쏘라고 재촉하지만 데니스는 "도망치면 사냥감인 줄 아니까. 그 자리에 서 있으라"고 말한 다음 사자의 다음 행동을 관찰한다. 결국 사자는 머리를 돌려 숲으로 사라진다. 위험이 사라진 다음 카렌과 데니스의 대화가 흥미롭다.
"도대체 사자가 얼마나 가까이 올 때까지 안 쏘려고 했어요?"
"사자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 거예요."
"내가 사자의 점심이 될 뻔했잖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사자의 잘못은 아니죠. 사자니까."
소설은 아프리카라는 태초의 대륙에 바쳐진 아름답고 거대한 헌사다. '야만'으로 상징되는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원주민들은 예측할 수 없이 일어난 일들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그런 일에 익숙하다. 백인들이 앞으로 닥칠 운명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평생 전전긍긍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들은 이미 벌어진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운명에 대한 응답, 즉 하늘이 말할 때 땅에서 보내야 하는 메아리라고 생각했다."
소설에는 동물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들도 가득하다. 소설은 아프리카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데니스의 입을 통해 이런 잠언을 던진다.
"동물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요. 사냥, 일, 교미 모두 처음 하는 것처럼 해요. 오직 인간들만 그런 것들을 나쁜 마음으로 하죠. 싫증을 내기도 하고."
맞는다. 동물들은 한순간도 대충 사는 법이 없다. 그들은 매 순간 자연이 시킨 대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아낼 뿐이다. 그들은 인간처럼 말과 행동의 무게를 상황에 따라 야비하게 조절하지 않는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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