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순살 아파트’ 대책도 밥그릇 싸움

2023. 11. 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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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혁신안에 업종 간 갈등…건축법 개정안도 진통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검단 LH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아파트 전면 재시공 및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지하주차장 상판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계기로 진행된 LH 아파트에 대한 추가 조사에서 조사대상 102개 단지 중 20개 단지의 철근 누락 사실이 확인됐다.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축물을 의미하는 일명 ‘순살 아파트’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사고 이후 시공을 맡았던 GS건설에는 과태료 부과와 함께 영업정지 10개월의 처분이 내려졌다. 발주처인 LH엔 지금 강도 높은 감사와 구조조정 등 ‘칼바람’이 불고 있다. LH의 ‘해체설’까지 거론된다. 이한준 LH 사장은 이미 사퇴 의사까지 밝힌 상태다. 부실공사에 연루된 감리·시공업체 80여 곳이 경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부실공사의 책임을 묻는 과정은 진행 중이지만 근본 원인을 찾아 사전에 부실공사를 막기 위한 해법을 마련하는 작업은 더디다. 사고 발생 6개월이 넘도록 정부가 “마련하겠다”던 부실공사 방지 종합대책은 아직 소식이 없다. 국토교통부는 주택공급활성화대책(9~10월), 8만 가구 신규택지 공급 계획(11월) 등 주택공급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서울시는 최근 ‘부실공사 제로 서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체적인 건설 안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국회에는 건축물의 구조 안전을 건립 초기 단계부터 확보하기 위해 공사 발주 시 ‘설계’와 ‘구조’를 분리해 발주하도록 하는 내용의 건설법 개정안이 이미 발의된 상태다. 지자체와 국회에서 추진되는 안전대책을 놓고 건설업계의 업종 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대립과 갈등이 이어지는 중이다. 대책이 현장에서 실행되기 전까지 숱한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건설업계에선 “부실공사 당사자들끼리 밥그릇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전문건설협 “하도급 말살” 반발

서울시는 지난 11월 7일 ‘서울형 건설혁신 대책’을 발표하고 부실공사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시가 발주하는 공공 공사는 물론 관내 민간 공사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부실공사 업체 처벌, 입찰제도 개선 및 건설 숙련공 양성 방안까지 포함하는 종합대책이다.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서울시가 발주하는 공사의 경우 건설 단계에서부터 안전과 직결되는 주요 공정을 원도급사가 직접시공토록 한 부분이다. 현재는 대형 건설사인 원도급사가 공사를 수주한 뒤 다시 공정별로 중·소건설사로 도급(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재하청)이 부실공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철근, 콘크리트, 교량공 등 시설의 구조 안전에 영향을 미치면서 공사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공정’은 앞으로 원도급사가 100% 직접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2022년 4월에도 ‘직접시공 확대 및 관리방안’을 통해 원도급사의 직접시공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 올 상반기에 서울시 SH공사가 발주한 ‘고덕강일 3단지’ 건설공사의 경우 철근·콘크리트공사, 흙막이공사, 전열교환기설치공사 등 전체 공정의 30%가량을 원도급사가 직접시공했다. 이번 대책에서는 직접시공의 범위가 보다 넓어지고, 명확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1월 7일 ‘서울형 건설혁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공사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공사에 대해 50% 이상의 직접시공 의무제가 필요하다”며 “서울시의 직접시공 선언을 환영하며 다른 광역자치단체도 안전과 품질을 위한 직접시공 확대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건설현장에서 숙련공으로 근무하는 A씨는 “아무래도 대기업 책임 하에 주요 공정을 시공하게 되면 노동자 처우나 안전대책이 지금보다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도급사로서 직접시공이 확대되는 데 따른 문제나 부담은 특별히 없다”면서도 “다만 인건비 등 공사금액이 다소 증액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직접시공 확대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사비 증액 등은 정부에 건의해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주요공정을 하도급받아 시공해오던 전문건설업체들은 집단 반발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서울시 대책이 나온 이튿날 바로 성명을 내고 “하도급을 말살하려는 이번 대책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건설사업은 종합적인 계획·관리·조정을 하는 종합건설업이 원도급을, 직접시공을 담당하는 전문건설업이 하도급을 주로 담당하면서 상호 원·하도급 관계를 형성해 수행해왔다”며 “일방적으로 전문건설업을 배제한다면 시공할 수 있는 공사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도급사가 공사의 모든 공정을 직접시공할 수는 없다. 전문건설업체들의 반발이 이어질 경우 주요공정 외 다른 하도급 공정에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아무리 주요공정이라 해도 전문성이 높은 전문건설업체에 불가피하게 하도급을 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원도급사 입장에서도 협력관계인 전문건설업체들의 반발은 부담이다. 서울시는 협회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하도급이 전면 금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협회 주장대로 공사가 끊기는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전문건설업체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공동입찰에 나설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건축사와 구조기술사 ‘충돌’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에서 현장 점검 중인 국토교통부 사고조사관의 모습 /연합뉴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인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건축법 개정안’을 놓고선 건축사와 건축구조기술사가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다. 현행 건축법은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를 건축사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건축물의 구조 안전에 대해선 건축구조기술사 등 관계 전문기술자의 ‘협력’을 받도록 하고 있다. 검단 LH 아파트 붕괴사고의 경우 무량판 구조물임에도 기둥의 전단근이 아예 빠지는 등 설계 단계에서부터 구조의 안전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서는 건축물의 구조 관련 설계는 반드시 건축구조기술사가 하도록 했고, 공사 감리 등의 업무도 직접 수행할 수 있게끔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개정안대로라면 현행 건축설계 발주·수주 과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은 법률상 설계 권한이 있는 건축사가 통째로 공사를 수주한 뒤 건축물의 구조 부분에 대해선 건축구조기술사에게 별도로 일을 맡기는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된다. 보기에 따라선 ‘협력’ 관계일 수도, ‘하청’ 관계일 수도 있다. 개정안을 적용하면 건축물의 설계 부분은 건축사가, 구조 부분은 건축구조기술사가 각각 수주받아 공사를 맡게 된다. 건설업계에서는 개정안 시행 후 건축사들의 기존 업무 영역이 축소되고 수익은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건축사 단체들은 개정안 폐기를 요구한다.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한국건축설계학회 등은 지난 11월 9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LH 사고를 비롯한 건설현장 안전사고는 저가 수주 경쟁, 설계·공사기간의 절대적 부족, 감리 독립성 결여, 안전불감증과 같은 종합적인 문제로 인한 결과”라며 “이번 개정안은 건축 분야의 상호협력 시스템의 붕괴를 일으키는 ‘건축생태계 붕괴 촉진법’”이라고 밝혔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은 “건축물은 다양한 건축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과 확인, 수많은 조정 작업을 통해 완성되는데 구조 분리만을 담아낸 편협한 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런 중대한 법안임에도 충분한 논의 및 의견수렴 과정이 생략된 점 역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축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건축구조기술사 측의 ‘청부 입법’이라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건축구조기술사 단체는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해 아직 협회 측의 입장이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며 “의견이 모아지는 대로 입장을 발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건축사 단체와 건축구조기술사 단체는 지난 8월 검단 LH 아파트 붕괴사고의 ‘책임 소재’를 놓고 한차례 공개적인 의견다툼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입장문에서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는 “구조기술사들이 협력이라는 탈을 쓴 하청으로 전락해 일부 건축사들의 갑질에 신음하는 대상이 됐다”며 설계와 구조의 분리 발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을 바라보는 학계의 입장도 설계 전공(건축학)이냐, 구조 전공(건축공학)이냐에 따라 미묘하게 갈린다. 수도권의 한 건축학부 교수는 “설계와 구조의 분리 발주냐 아니냐를 떠나서 건축사와 건축구조기술사는 건축물의 안전과 품질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관계”라며 “개정안을 놓고 싸우기에 앞서 부실공사를 근절하기 위한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지방의 한 건축공학과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볼 때 설계와 구조를 한꺼번에 발주하고 수주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며 “엄연히 설계와 구조의 영역이 다르고, 필요한 전문 지식이나 업무 경험 등도 다르기 때문에 분리 발주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0월 6일 공개한 ‘건축물 부실공사의 원인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서는 “건축물의 구조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의 설계단계에서 구조설계가 세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며 “설계단계에서 기본설계와 구조설계를 분리해 발주함으로써 건축사와 건축구조기술사의 역할과 권한을 각각 부여하는 등의 법·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번 개정안의 경우 국토부와 사전 공감이나 의견조율 없이 발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정안을 놓고 이익단체 간 견해 차이가 크다고 들었다”며 “정부의 입장이나 방침은 아직 따로 없고, 지금은 개정안 관련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등이 지난 11월 9일 국회에 제출된 건축법 개정안의 폐기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한건축사협회 제공



■“밥그릇 싸움 멈춰야”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도, 국회에 발의된 건축법 개정안도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서울시 대책의 경우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지가 관건이다. 예컨대 서울시는 2019년 11월 건설 일용직 노동자 여건 개선을 위한 표준근로계약서를 조례로 마련했다. 시가 발주하는 공공 공사의 노동자들에게 4대 보험, 주 5일 40시간 근무 시 주휴수당 지급 등을 의무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막상 현장에서는 표준계약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은평구에서 서울시 발주 공사에 참여했다는 B씨는 “한 전문건설업체와 계약 후 화장실 설비 업무를 맡았는데, 그 업체가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주 4일 근무 후 주말 초과근로’ 등 편법 근무를 요청해와 어쩔 수 없이 응했다”며 “현장 문제를 서울시가 다 관리·감독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강동구에서 시 발주 공사에 참여한 C씨도 주휴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그는 “업체를 상대로 고소장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축법 개정안은 당장 국회 본회의 문턱부터 넘어야 한다. 개정안에 참여한 여당 의원이 11명으로 많지 않아 당내 주류 여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현재 여당과 정부의 경우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1기 신도시 특별법 추진 등 건축 안전보다는 부동산 개발 문제에 힘을 싣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분리 발주를 감당할 건축구조기술사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우려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집계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건축구조기술사는 전국에 1273명으로, 건축사(2만6980명)에 비해 적다. 국가공인자격인 건축구조기술사는 고시 수준의 고난도 시험으로 합격률이 극히 낮기로도 유명하다. 학계에서도 해당 분야 전문인력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축업계가 서로 이해관계를 따지기에 앞서 부실공사 근절을 위해 협력하는 게 우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금처럼 정부 따로, 지자체 따로, 국회 따로 할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성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서울시 대책이나 국회 개정안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결국 부실공사 당사자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양상으로밖에 안 보인다”며 “현장에서 안전 시공을 하는 인력은 노동자인데, 막상 노동자는 논의에서 배제돼 있다.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서자고 정부 측에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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