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인생 2막으로 선택한 ‘막노동’[책과 삶]
나의 막노동 일지
나재필 지음 | 아를|288쪽|1만7000원
나재필은 27년간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신문사의 ‘별’이라는 편집국장과 논설위원도 지냈다. 한국기자협회 한국편집상과 사진편집상을 받았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조직의 요구에 충실했지만 “송장 같은 육신”만 남았다. 2018년 스스로 조기 퇴직을 택한 뒤 단기 일용직 아르바이트, 식당 설거지 보조 등을 전전하다 2022년 겨울 대기업 건설현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른바 ‘막노동’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것이다.
나재필의 <나의 막노동 일지>는 제목 그대로 막노동을 하며 떠올린 생각들과 느낀 감정들을 정리한 글이다. 한때 시장, 의원, 기업인과 마주 앉아 식사하던 그가 지금은 분진을 뒤집어쓴 육체노동자가 됐다. 베테랑 기자 출신답게 막노동 현장의 모습을 날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은퇴한 뒤에도 먹고사는 걱정에 시달려야 하는 기성 세대의 회한도 가감 없이 담겼다. 현장에서 만난 여러 사람의 팔자 사나운 사연들을 곡진하게 풀어냈다. 아내와 휴대전화로 화상통화를 하면서 ‘2개월 후에 만나자’고 약속하는 모습, 그늘진 콘크리트 바닥에서 새우처럼 몸을 말고 선잠을 자는 모습,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며 더 많은 일을 찾아다니는 모습, 겨울밤 칼바람 속에서 펭귄들처럼 뭉쳐 퇴근하는 모습에 동료로서 살가운 시선을 보냈다.
막노동판의 문법을 소개하며 현실 문제도 짚었다. ‘공수(일당)’ ‘가타(거푸집)’ ‘낫토(너트)’ ‘나라시(고르기)’ ‘오사마리(마무리)’ 같은 은어를 비롯해 공사현장의 원리를 사실적으로 적었다. 반복되는 사고의 근본 원인인 불법 다단계 하청 구조,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위험 현장으로 밀려나는 ‘위험의 이주화’ 문제, 중노동을 독려하는 노동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남겼다. 자신을 보호하던 갑옷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몸뚱이만으로 막막한 세상을 돌파하는 중년 남성의 글은 거짓없이 솔직해 보인다.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많은 기자들과 달리 나는 잘리지 않기 위해 광고와 맞바꾸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막노동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지만 부끄러워할 일도 없었다. (중략) 나는 앞으로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계속 도전해볼 생각이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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