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진수완, 드라마는 이래서 작가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거다('워터멜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tvN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이 이번 주 막을 내렸다. 사실 내심 시즌2를 기대했다. 이렇게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아서. KBS <경성 스캔들>, MBC <해를 품은 달>, MBC <킬미 힐미>, tvN <시카고 타자기>의 진수완 작가가 썼다. 드라마는 역시 작가의 예술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치병, 불륜, 기억상실, 난데없는 살인 등 우리나라 드라마의 고질병인 자극적인 장치 없이도 이처럼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을. 려운, 최현욱, 설인아, 신은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고두심, 천호진, 최원영을 비롯한 잘 받쳐주는 중견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드라마의 격을 올려놓았다.
"못 고친다고하면 할미가 할미 귀때기 떼어줄게. 심장이 필요하다면 도려내주고 눈이 필요하다면 두 쪽 다 너 줄게."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는 이찬이 할머니, 고두심 씨의 절규다. 이런 게 바로 할미 마음이 아니겠나. 이건 드라마 속 대사지만 실제로 이런 할머니를 방송에서 봤다. 지난주 SB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1103화에 소개된 희소 난치병으로 전신마비에 이른 열다섯 살 아들 서준이를 돌보는 김래형 씨의 사연. 서준이는 열다섯 살이지만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그저 감각으로만 소통하는 상태란다. 인지 능력은 신생아 수준이라고. 서준이가 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래형 씨 어머니께서 '너하고 나하고 눈 하나씩 서준이게 주자', 이렇게 제안을 하셨다고 한다. 자식의 고통을 어떻게든 나누고자 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이 절절하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의 주인공 은결(려운)이는 '코다'다. 이번에 비로소 알게 된 건데 'CODA'는 청각장애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청인 자녀, 즉 들을 수 있는 자녀라고.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이어주는 사람이지, 말과 손으로', 은결이를 음악의 세계로 이끈 비바 뮤직 사장님(천호진)의 설명이다. 이 드라마는 한 마디로 은결이를 주축으로 펼쳐지는 타임 슬립 판타지 로맨스다. 은결이가 수상한 악기점에 들어갔다가 마스터의 제안으로 과거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또래들과 함께 밴드 '워터멜론 슈가'를 결성하게 된다.
밴드 멤버 중 프론트맨 역할의 이찬(최현욱)이가 실은 은결이의 아버지(최원영)였다. 거기서 은결이는 아버지가 청각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고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가 청각장애인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은결이가 그 사고를 막아보려고 애를 쓴다. 밴드맨이 꿈이었던 아버지가 듣지 못하게 되다니, 너무나 안타깝지 않은가. 그러나 은결이는 아버지의 사고를 막지 못한다.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타임 슬립 드라마가 과거로 가서 뭔가를 바꿔 놓는다? 그게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톱니바퀴 모양으로 다른 사람의 삶과 맞물려 있지 않나. 내가 뭔가를 바꾸면 다른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주기에 삼가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결국 막아내지 못했고 이찬이는 그냥 농인으로 살게 된다. 과거의 변화로 인해 현재가 달라진 부분은 은결이가 1995년으로 가서 자신의 엄마인 청하(신은수)를 돕게 되는데 그로 인해 외할아버지와 엄마가 극적으로 화해하게 되고 그 덕에 은결이도 진성가의 부를 누리게 된다. 은결이가 갑자기 부자? 인기 스타? 결국 외할아버지의 부가, 돈이 모든 걸 해결해주네? 이게 뭐야? 했는데 그저 드라마로, 판타지로 보면 되지 싶다.
마지막 화에 '워터멜론 슈가 밴드' 멤버들의 2023년 버전으로 류수영, 진태현, 송창의 씨가 등장했다. 1995년에 착했던 애들이 여전히 선하게 잘 살고 있더라. 환경은 바뀌었지만 이찬이 아빠 엄마의 품성도 그대로고.
시즌2를 기대했던 건 온유(설인아)의 스쿠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장면 때문이다. 온유가 과거에 남게 되고 그래서 시즌2에 은결이가 온유를 찾으러 과거로 가는 건 아닐까 기대했던 것. 그런데 해피엔딩이어서 반갑긴 해도 꽉꽉 닫힌 결말이다. 보내기는 못내 아쉬우나 달달한, 빛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이 났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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