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 없었다더니…국방장관 보좌관, 해병대에 "수사의뢰 말고 징계로"
주고받은 메시지, 법원에 제출돼
보좌관 '책임자는 수사의뢰 말라'
국방부 "개인 SNS... 의도 몰라"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이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던 해병대에 ‘지휘책임자는 수사의뢰를 하지 말라’는 취지의 요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수사의뢰 대상에) 누구는 넣고 누구는 빼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국방부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이라고 주장해온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사건 초기에는 '수사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던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징계만" 요청?
박 대령의 '항명 사태' 직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이던 박진희 육군 준장(현 소장)과 김 사령관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가 최근 중앙군사법원에 제출됐다. 이에 따르면 박진희 군사보좌관은 지난 8월 1일 낮 김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박 보좌관이 언급한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사단장 등 상급자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명시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박 대령의 보고에 이 장관이 서명(7월 30일)한 후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 사령관은 박 보좌관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다. 그는 "지금 단계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징계는) 나중에 피의자 신분이 안 됐을 때 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경찰 조사 이후입니다"라고 답했다.
박 보좌관이 김 사령관에게 이 같은 요구를 한 것은 박 대령이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요청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 보좌관이 이 메시지를 보내기 2시간 전 유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전화했다. 통화 내용에 대해 박 대령은 '당시 법무관리관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자 적시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외압으로 느꼈다'고 언론에 폭로한 바 있다.
박 보좌관은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알고 있다는 듯 김 사령관에게 "수사단장(박정훈 대령)은 법무관리관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법무관리관의 말이 수사단장에게 먹히지 않자 장관 최측근인 군사보좌관이 해병대 사령관에게 메시지를 보내 재차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군대에서 하급자인 박 보좌관(1성)이 김 사령관(3성)에게 장관 결재를 뒤엎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 역시 실질적으로는 '윗선의 지시'로 여겨진다는 게 군 안팎의 지적이다. 메시지를 보냈을 당시 박 보좌관은 이 장관의 우즈베키스탄 출장에 동행해 24시간 밀착 수행 중이었다. 그러나 박 보좌관은 연합뉴스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을 사령관님에게 이야기한 것이고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도 "박 보좌관의 개인적인 SNS를 통해 문답이 오고 간 것"이라며 "어떤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박 보좌관은 수사 결과 경찰 이첩도 늦추려 했다. 그는 "내일(8월 2일) 오전 10시에 이첩할 계획"이라는 김 사령관에게 "(이 장관과 함께) 우즈벡에 있다. 빨라야 8월 10일 이후 이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보냈다. 박 대령은 김 사령관의 말대로 2일 오전 8명의 혐의가 적시된 수사 자료를 경북경찰청에 인계했다가 보직 해임된 후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박정훈 비난해온 사령관 "수사 문제없다"
박 대령의 외압·항명 논란이 불거지자 김 사령관은 박 단장이 자신의 지시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사령관은 1일 박 보좌관과 대화할 당시까지만 해도 수사 결과에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폭넓게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김 사령관은 1일 오후 박 보좌관에게 "수사단 수사 결과를 어제와 오늘 다시 확인했는데 문제점 미식별"이라고 적었다.
같은 날 다른 메시지에서는 "경찰 수사에서 혐의자가 추가·제외될 수도 있는데"라며 "분명한 것은 최초 시작 단계에서 군 수사가 부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공정한 수사만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최종 혐의자는 경찰 수사로 가려지는 만큼 군 수사 단계에서는 부실함 없이 제 식구 감싸기 등의 의혹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앞서 김 사령관이 8월 2일 수사단의 중앙수사대장에게 전화해 "어차피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한 건 없다"며 박 대령을 두둔한 녹취록도 공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김 사령관은 국회에 출석해 '군 기강 문란 사건'이라며 박 대령을 비난했다.
최민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6일 논평을 내고 "사실상 임성근 사단장 등 해병대 1사단 지휘부를 과실치사 혐의에서 제외하라는 국방부 지침인 셈"이라며 "이것이 수사 외압이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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