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로 대피’ 명령하더니···‘북부 초토화’한 이스라엘, 남부 공격 초읽기

선명수 기자 2023. 11. 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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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 집결’ 남부도시에 대피 전단 살포
‘북부 소개령’에 인구 150만명 남부 집결
대규모 작전 시 민간인 피해 확산 불가피
이스라엘군, 북부 알시파병원 사흘째 수색
7일째 물·식량 공급 끊겨···통신마저 단절
네타냐후 “민간인 피해 최소화 실패 인정”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도시 칸유니스에서 아이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진 가족의 시신을 안고 울고 있다. 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장악을 완료한 이스라엘군이 피란민이 대거 집결한 남부 지역에서도 조만간 대규모 군사 작전에 돌입할 것을 시사하는 징후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북부 지역 소개령을 내리며 대대적인 지상 작전을 벌였던 이스라엘군이 본격적으로 남부 공격에 나설 경우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 연료 부족으로 구호 물자 공급이 끊긴 가운데 유엔은 가자지구 주민들이 ‘즉각적인 기아 위험’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과 CNN 등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1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 동부 4개 마을에 “안전을 위해 즉시 거주지를 떠나 알려진 대피소로 이동하라”는 내용의 전단을 배포했다. 공중에서 살포된 이 전단에는 “테러리스트와 그 시설 근처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생명의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테러리스트가 사용하는 모든 집은 표적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담겼다. 다만 ‘알려진 대피소’가 어디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에 지상군을 투입하기 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전단을 북부 일대에 살포한 바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도시 칸유니스에 유엔이 제공한 텐트로 난민촌이 형성돼 있다. 이스라엘군의 ‘북부 소개령’으로 남부지역에는 가자지구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150만명이 집결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AP연합뉴스

앞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지난 14일 “앞으로 북부와 남부 모두에서 작전을 지속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쟁 발발 후 남부 지역에서도 여러 차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상자가 속출했지만, 대대적인 지상 작전은 북부 지역에서만 이뤄져 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관련 시설이 밀집한 북부에서 지상전을 위해 북부 주민 110만명에게 남부로 대피할 것을 여러 차례 명령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이 대거 남부로 대피했고, 남부 주요 도시는 몰려든 피란민으로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 인구는 기존 4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유엔은 현재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4분에 3에 달하는 150만명이 남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집을 잃은 약 80만명이 학교, 텐트촌 등 150개 유엔 보호소에 과밀 수용돼 있다. 인구 밀집으로 식량 및 식수 부족은 물론 전염병 위험도 커진 상태다.

1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도시 칸유니스의 난민 텐트촌에서 한 아이가 비닐 차단막 밖을 내다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연료 부족으로 피란민들의 ‘생명줄’과 같은 구호품 이송이 중단됐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는 이집트 접경 라파검문소를 통해 반입된 구호 물품의 이송이 중단됐다고 17일 밝혔다. 필리페 라자리니 UNRWA 사무총장은 “가자지구에는 연료도, 병원도, 물도, 통신도 없다”면서 “연료를 곧 확보하지 못한다면 가자지구 전역에서 구호 활동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자지구를 방문한 그는 “아이들이 물 한 모금과 빵 한 조각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며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가자지구 전역의 통신과 인터넷이 연료 부족으로 또 다시 두절되면서 구호 활동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 내 통신이 두절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가자지구에 식량과 물 공급이 중단됐으며 필요한 수량의 극히 일부만 국경을 통해 도착하고 있다”며 이곳 주민들이 “즉각적인 기아 위험”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1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도시 칸유니스에서 주택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무너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하마스 증거’ 찾기 위해 병원 수색 계속···“병원 경내서 땅굴 발견”

가자지구 최대 규모 병원인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에서 군사 작전을 개시한 이스라엘군은 이 병원 지하에 하마스 사령부가 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사흘째 병원 수색을 계속했다. 이스라엘군은 특수부대가 병원 건물을 한 동, 한 층씩 차례로 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병원 경내에서 하마스 땅굴 갱도와 무기를 실은 차량을 발견했다며 땅굴 입구를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을 공개했다. 또 병원 인근의 한 주택에서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시 납치됐던 인질 예후디트 바이스(65)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그간 인질의 상당 수가 병원 안에 억류돼 있을 것으로 추정해 왔으나, 병원 안에서 인질을 발견하진 못했다.

이스라엘군은 17일 알시파 병원과 인근 건물에서 하마스에 억류됐던 여군 노아 마르시아노 상병(19)의 유해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마르시아노 상병은 지난달 7일 이스라엘 남부 나할 오즈 군기지에서 복무하던 중 하마스에 납치당했다. 하마스는 지난달 11일 영상을 통해 그의 신원과 부모의 이름, 고향 등을 밝혔다. 이후 마르시아노 상병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숨졌다고 주장하며 사후 모습까지 촬영, 지난 13일 시신을 공개한 바 있다. 이스라엘군은 최종 신원 확인을 위해 시신을 본국으로 보냈다.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알시파병원 경내에서 발견했다고 밝힌 땅굴 입구의 모습. IDF제공

이스라엘군은 병원에 대한 공격이 ‘전쟁 범죄’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지난 15일 이 병원 안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작전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알시파 병원은 하마스의 근거지’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스라엘군은 작전 첫날 병원 내에서 하마스의 무기를 확인했다며 소총과 군용조끼, 수류탄 등의 사진을 공개했으나 주요 외신과 인권단체들은 이곳을 ‘하마스의 무기고’라고 부르기에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하마스는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군이 병원 공격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근거 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보건부가 이스라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국제기구 및 조직이 병원을 방문해 직접 조사할 것을 수차례 요청해 왔다고 덧붙였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땅굴 역시 군사용 목적인지, 어디로 연결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군은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의 심장부라는 주장을 입증할 만한 조사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병원 의료진들 역시 하마스 땅굴은 가자시티 곳곳에 있으며, 병원은 하마스 사령부와 무관하다고 수차례 주장해 왔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무기가 “이스라엘군의 병원 공격을 정당화하고 국제인도법 등에 의해 보호되는 병원의 지위를 취소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네타냐후 “민간인 피해 최소화 못했다” 인정

알시파 병원은 이스라엘군에 완전히 포위된 채 7일째 식수 및 식량 공급이 끊긴 상태다. 모하마드 살미야 병원장은 BBC에 “이스라엘군의 저격 작전이 계속되고 있어 누구도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할 수 없으며 동료 의사들과의 소통도 끊긴 상태”라며 “이스라엘군이 수시로 병원에 드나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분유를 탈 물이 없어서 아기들이 굶주리고 있다”며 “신장 투석을 받지 못한 1명이 사망했고, 다른 4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전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이 병원 방사선과, 화상 및 신장치료센터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북부 전역의 병원이 연료 부족과 공습으로 폐쇄된 가운데, 유일하게 가동 중이었던 알아흘리 병원마저 교전으로 인해 환자와 의료진이 병원 안에 고립된 상태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병원 안뜰에 여러 명의 사상자가 있지만 교전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전했다.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도시 칸유니스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다친 어린이가 치료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가자지구의 의료 인프라가 붕괴되고 통신마저 두절되면서 정확한 인명 피해도 수일째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 10일 누적 사망자가 1만1078명이라고 발표한 뒤 사상자 집계를 멈춘 상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하마스 소탕 과정에서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인정했다. 그는 미국 CBS 인터뷰에서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하려고 했으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민간인을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반면, 하마스는 그들을 위험한 곳에 잡아두려고 모든 것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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