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한 없이 작아 보였던 시진핑…뭘 챙겼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6년 만에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 참석 차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것이었지만 관심은 단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미중 정상회담이었습니다. 남중국해에서 양국의 군용기와 함정이 아슬아슬한 대치를 이어가고 경제 문제에서도 서로를 향해 규제를 쏟아내며 갈등을 한껏 끌어올렸던 두 정상의 만남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갈 길 가자'는 바이든 vs '잘 지내보자'는 시진핑

회의 시작 전 공개 발언은 예상외로 길었습니다. 통상 가볍게 한 마디씩 하거나 아예 없이 바로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번 회담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치 잘 짜여진 상황극처럼 서로 준비된 발언을 조근조근 풀어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을 정리하면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 알아왔고 항상 의견이 같았던 건 아니지만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니며 우리 만남은 늘 솔직하고 유용했다. 경쟁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게 관리하자' 정도였습니다.
시 주석도 '50년 간 양국 관계가 순탄했던 적은 없지만 우여곡절 속에서 발전해왔다'며 미중 간 이견을 당연 시 한 점은 같았지만 그다음이 달랐습니다. '충돌로 번지지 않는 경쟁'에 방점을 찍은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한마디로 '대국끼리 잘 좀 지내보자'였습니다. 시 주석은 '대국 간 경쟁은 현시대의 대세가 아니며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바꾸려 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세계는 중미 두 나라가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한 나라의 성공이 다른 나라에게 기회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선물 보따리 챙긴 바이든…가장 큰 성과는?

회담 전부터 일부 보도가 나오긴 했지만 회담 결과는 미국이 바라던 그대로였습니다. 먼저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이 타이완을 방문하면서 끊어졌던 군사 소통 채널이 복원됐습니다. 그간 우발적 사건이 양국 간 충돌로 번지는 걸 막아야 한다며 미국이 중국을 향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사안으로, 중국이 끝끝내 외면해왔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복원됐습니다. 양국은 기존의 군 고위급, 실무급 회담, 사령관급 전화 통화는 물론 정상 간 직통 전화, 핫라인 구축에도 합의했습니다.
언론에서는 군사 소통 복원에 주목했지만 사실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첫 번째로 꼽은 성과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합성 마약 펜타닐 원료 유통 차단입니다.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사태 같은 국제 이슈가 파급력 있게 비춰지지만, 사실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대외 이슈일 뿐입니다. 그보다는 표와 직결된 경제와 국경, 마약 문제 등이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멕시코 등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자 유입과 함께 이 국경을 통해 불법 반입되고 있는 펜타닐 문제로 쉴 새 없이 공격받던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그간 펜타닐의 원료 공급처로 지목된 중국의 협조가 절실했는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약속을 받아낸 겁니다. 중국 외교부도 중국 내 펜타닐 원료 화학공장을 단속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국이 실제로 얼마나 성실하게 이를 이행할지 의문이지만 실질적이든 표면적이든 미국의 경쟁자인 중국을 움직여 단속에 나서게 했다는 것 자체가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작지 않은 선물인 셈입니다.
타이완도 첨단분야 통제도…사실상 빈 손

이렇게 아낌없이 내어준(?) 중국은 무엇을 챙겼을까요? 먼저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가장 강조해온 타이완 문제입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미국은 타이완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구현해야 하며, 타이완 무장을 중단하고 중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도 '하나의 중국' 방침을 거듭 확인하긴 했지만, 현상 변경 반대라는 기조 아래 타이완 독립을 지키기 위한 조치를 계속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실 중국이 원한 건 내년 1월 타이완 총통 선거에서 미국이 타이완 내 독립세력인 민진당을 돕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중국을 향해 타이완 선거 절차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타이완 문제에서 단 하나도 양보하지 않은 겁니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이 회담 중 수년 내 타이완에 대한 군사적 행동 같은 계획은 없다고 말해 무력 사용 가능성을 열어 뒀던 이전보다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시진핑은 무얼 챙겼을까?

그렇다면 시진핑 주석은 정말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걸까요?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건 없어 보입니다. 미국이 원했던 현안들에 더해 워싱턴D.C. 동물원에서 데려갔던 판다까지 다시 보내줄 의향까지 내비치고도 말입니다. 다만 추론은 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현시점에서 중국이 가장 피하고자 했던 건 미국의 추가적인 '옥죄기'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번 회담을 전후해 적어도 당분간 '추가적인 규제 조치는 없을 거다'라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기류는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에게 추가적인 규제가 없다는 건 그 자체로 숨 쉴 공간이 생기는 거라고 한 전문가는 설명했습니다. 씁쓸하지만 강대국들은 종종 뭔가를 직접 해주지 않아도 상대에게 불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만으로 생색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런 조치가 있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번에 시 주석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등과 만나 벌인 투자 유치 활동도 그런 사례일 수 있습니다. 시 주석이 미국의 기업 CEO들을 만나는 거야 막을 수 없겠지만 미국 정부가 마음먹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중국 투자를 막거나 방해해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지도자에게 미국으로부터 몇 가지 지원이 절실히 필요했다면서 시 주석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금융 투자 재개와 첨단 반도체 등 기술 규제의 일시적 중단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금융 투자 재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첨단 기술 분야에 부과된 규제를 바이든 행정부가 일시적이든 뭐든 중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미중의 '숨 고르기'…"길어야 1년"
하지만 이런 '잠시 멈춤'이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까요?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짧으면 2~3개월, 길어야 1년 정도일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미중 관계의 경우 워낙 변수가 많은 데다 내년 미국 대선이 끝나면 어떤 식으로든 또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교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미중 대립은 현실적 재앙입니다. 숨 고르기가 끝난 뒤 두 강대국이 또 어떤 대립을 이어갈지 조마조마할 뿐입니다.
(사진=AP, 연합뉴스)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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