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 '참 잘했어요'와 김이나 눈물, 이보다 더 좋은 인증 있을까('싱어게인3')
[엔터미디어=정덕현] "저 약간 좀 죄송한 얘기지만... 25호님 미치신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게 근거가 있어야 눈물이 나는데 제가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닌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내가 그냥 25호님 몸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제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막 상상하게 만드는 서사를 만들어내셨던 것 같아요."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3>에서 1호 가수와 25호 가수가 팀을 이뤄 최백호의 '나를 떠나가는 것들'을 불렀을 때 김이나 심사위원은 끝내 눈물을 보이며 그런 심사평을 내놨다.
작사가다운 평이다. 김이나 심사위원의 평은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노래를 통해 갖는 감정들을 다양한 문학적 표현들로 짚어낸다. 그는 1호 가수와 25호 가수가 함께 한 무대에 대해서도 "든든한 바위 위에 피어있는 너무 예쁜 꽃" 같다고 표현했다. 1호 가수가 갖고 있는 '불안정한 아름다움'에 25호 가수가 가진 단단하면서도 세월이 녹아 든 가창력의 어우러짐을 그렇게 표현한 것. 아마도 시청자들은 이 평을 들으며 이 두 가수가 가진 색깔과 개성을 하나의 이미지로 상상하게 되지 않을까.
설치보이즈라는 팀명으로 나온 12호 가수와 40호 가수가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을 불렀을 때도 이해리 심사위원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 정도로 신나는 이 무대에 대해 "악동 팀인데 한 명은 I악동(내향형)이고 한 분은 E악동(외향형)"이라고 말했다. 12호 가수가 가진 거친 목소리와 상반되는 수줍은 느낌과 40호 가수의 밝은 에너지를 콕 짚어 잘 표현해낸 멘트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임재범 심사위원은 "두 분이 한 팀이었으면 좋겠다"고 한 뒤 "1970년대 펑크 록 느낌을 잘 살려주셔서 좋았다"고 첨언했다. 그 무대가 보여준 음악적 색깔을 한 마디로 짚어내준 평이었다.
46호 가수와 56호 가수가 팀으로 나와 김건모의 '스피드'를 자신들의 개성과 끼를 한껏 살려 모두를 감탄하게 만든 무대에서도 김이나 심사위원은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벌써"라며 투정하듯 멘트를 꺼내놓고는 "46호님은 미국 서부에 럭비 팀장 여자친구 할 것 같은 그런 잘 나가는 고등학생 느낌을 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 것도 모르는 기숙사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여자가 됐다가 하시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46호 가수가 중간에 갑자기 톤을 확 바꿔 완전히 다른 느낌을 낸 걸 그렇게 표현해낸 것.
또 "옆에서 56호님은 고관절을 여자가 그렇게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아저씨처럼 쩍벌을 하고 하체를 쓰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소리가 라이브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했다고 평했다. 이 무대에 대해 임재범 심사위원 역시 "사람 놀래키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손댈 게 없다" "만만치 않다"는 간결한 평 뒤에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될 법한 "참 잘했어요"를 날렸다.
임재범의 "참 잘했어요"는 이제 참가자들이 "나도 듣고 싶다"고 할 만큼 <싱어게인3>에서는 하나의 '좋은 무대 인증'이 되어버렸다. 처음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만 하더라도 임재범의 심사는 낯선 느낌이었지만, 어느새 <싱어게인3>의 심사에 있어서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래 가수의 공력에서 나오는 멘트 하나하나는 짧아도 임팩트가 강하게 참가자들에게 전해지고, 그건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뇌리에도 각인되고 있으니 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찌 보면 심사가 그 색깔을 만들어내고 프로그램을 끌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건 평가를 하는 심사만이 아니라, 이제 새 출발을 무대에서 시작하려는 가수들에게 하나의 서사를 써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음원을 낸 가수들이지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가수들이라면 그래서 심사가 그려주는 서사는 더더욱 중요해진다. <싱어게인3>가 가진 심사의 품격이 유독 도드라지게 다가오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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