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억울해서 정치하는 사람들
“檢 지독하게 증오하는 사람들”
증오·자기연민이 총선 출마 동력
‘각종 억울함’의 시작은 2019년 8월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내정한 직후 정치권에선 후보자와 가족에 대한 의혹이 쏟아졌다. 자녀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낙제를 하고도 장학금을 받고, 고교 때 이미 의학 논문 1저자로 등재돼 대학 입학을 보장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배우자가 일하는 대학 총장 명의의 ‘위조 표창장’을 자녀 입시 때 제출하고, 미공개 정보를 취득해 주식 거래를 했다는 말도 나왔다. 부부의 자산 관리인은 증거를 숨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장관 본인의 의혹도 다양했다. 측근의 불법 금품 수수를 보고 받고도 감찰을 무마하거나,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을 통해 발급한 아들의 가짜 인턴증명서를 대학원 입시에 활용한 혐의도 받았다. 취임 35일 만에 사퇴한 조 전 장관은 다음날 교수로 복직했다. 이듬해 3월 자녀입시비리‧감찰무마 혐의 재판이 시작됐고, 1심 법원은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징역 4년을 확정받아 복역하던 배우자는 만기 출소 11개월 전에 가석방됐다. 사법 절차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는 검찰의 폭력이라며 명예가 훼손됐다고 했다.
억울하다는 사람은 또 있다. 2015년 진보진영 거물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2년을 확정 받았다. 5년 뒤, 당시 수사팀이 증인에게 한 전 총리에 불리한 위증을 종용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진상 파악에 나선 검찰의 조사방식을 두고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충돌했다. 사건을 대검찰청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넘긴 게 발단이 됐다. “감찰 중단이다” “아니다, 절차에 따른 이첩이다”의 싸움은 곧 사인(私人) 추미애 대 윤석열의 자존심 대결이 됐다.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수사가 시작되자, 추 장관은 윤 총장을 수사에서 배제했다. 2020년 11월엔 아예 총장 직무를 정지시켰다. 그럴수록 윤 총장은 더 유명해졌다. ‘권력에 맞서 탄압받는 검사’로 보수 간판 스타가 됐고, 이듬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사퇴한 추 장관에 ‘윤석열 정권 1등 공신’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5선 의원, 인천시장, 당대표를 지낸 86(80년대 학번·60년대생)운동권 정치인도 있다. 2021년 4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당시 불법 정치자금을 뿌린 혐의로 윤관석 의원이 법정 구속됐다. 그가 송영길 후보 당선을 위해 동료 의원들에 대한 금품 제공을 제안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외 현역 의원들이 줄줄이 엮였다. ‘당선’이라는 최대 혜택을 입은 송 전 대표는 “이정근의 개인 일탈”이라고 했다.
인허가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수천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제기됐다. 입법 로비 당사자는 송 전 대표 후원 조직인 ‘먹고사는문제연구소’에 수억 원을 후원한 사업가였다. 송 전 대표에게 뇌물죄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검찰은 송 전 대표와 측근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다만 당사자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부정한 돈을 받거나 준 적이 일절 없다고 말했다.
길고도 다양한 억울함은 ‘총선 출마’로 모였다. 검찰 때문에 본인의 명예가 실추됐으니 국회의원에 당선돼 신원(伸寃)하겠다는 것이다.
아들·딸 입시에 사회적 지위를 악용한 조 전 장관은 “비법률적 방법으로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전임 대통령을 찾아가 책 사인회를 열었다. “내가 옳았다”는 추 전 장관도 정치 재개를 준비 중이다. 언론 인터뷰에서 “출마해야 된다” “당이 정신차리면 내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측근에 따르면 이번 총선뿐 아니라 서울시장, 나아가 “더 큰 계획”도 고심 중이라고 한다. 불출마를 약속했던 송 전 대표는 비례 정당이라도 만들어 원내 재입성 하겠다고 했다. ‘4억짜리 주택 전세살이’로 도덕적 우월성은 충만하다.
이들을 잘 아는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검찰을 지독하게 증오하고 윤석열을 없애버리고 싶은, 이성적 코마 상태인 분들”이라고 했다. 청와대, 법무부, 168석 정당에 있던 사람들이 본인 억울함 푸는 데 유권자의 4년을 걸라는 건가. 병적인 이기주의 말곤 설명이 안 된다. 유권자에게 증오나 연민의 선택지를 종용하는 것이야말로 ‘후진’ 정치다. 차라리 “억울한 사람 돕겠다”는 말이라도 좀 하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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