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시진핑에 “일본산 식품수입규제 즉각 철폐 강하게 요구”
기시다 中에 수산물 수입 재개 강력 요구
무역 협력 채널 신설· ‘전략적 호혜 관계’ 재확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양자 회담을 가졌다. 중일관계가 악화한 가운데 열린 이번 회담에서 양국이 대립하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 주요 의제들이 논의됐다. 기시다 총리는 시 주석에게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 철폐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일본 공영 NHK 등에 따르면 두 정상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이날 오전 1시간 동안 비공개로 회담을 진행했다. 중일 정상회담은 지난해 11월 이후 1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두 정상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양국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시 주석은 “쌍방은 역사 대세와 시대 흐름을 파악하고, 의견 차이를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중일 4가지 정치문서’가 확립한 여러 가지 원칙을 준수하고, 전략적 호혜 관계의 정의를 재확인 및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시대 요구에 부합하는 중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대 정치문건은 1972년 수교 때 발표한 ‘중일 공동성명’, 1978년 양국 외교장관이 서명한 ‘중일 평화우호조약’, 1998년 양국이 발표한 ‘중일 평화와 발전의 우호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 노력을 위한 공동선언’, 2008년 양국 정상이 서명한 ‘중일 전략적 호혜관계 전면 추진에 관한 공동성명’이다. 이 문건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상호 주권·영토 완전성 존중, 패권 추구 반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국제사회가 역사적인 전환점에 있다”며 “양국은 지역과 국제사회를 이끄는 대국으로서 세계 평화와 안정에 공헌해 나갈 책임이 있다. 밝은 일중 관계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힘을 합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양국 사이엔 영유권 분쟁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 중국의 일본인 구속 문제 등 산적한 다양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특히 중일 관계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양국 정상 간 논의에 관심이 쏠렸다.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에 강하게 반대해 온 중국은 이에 대한 반발로 일본산 수산물을 전면 금지한 상태다.
기시다 총리는 시 주석과 회담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ALPS(알프스·다핵종제거설비) 처리수 해양 방출에 대해 내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냉정한 대응과 중국의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 즉각 철폐를 강력히 촉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중 양국은 건설적인 태도로 협의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며 “앞으로 전문가 차원에서 과학에 입각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중앙TV(CCTV)는 오염수 해양 배출 문제와 관련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적절한 방법을 찾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핵오염수 해양 배출은 인류의 건강, 전 세계 해양환경, 국제 공공이익에 관련된 문제”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어 “일본은 국내·외의 합리적인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책임감 있고 건설적인 태도로 적절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와 함께 시 주석에게 중국이 일본 주변에서 러시아와 협력하는 등의 방식으로 군사 활동을 강화하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국제사회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전했다고 말했다. 또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 내 일본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중국이 설치한 부표를 즉시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동중국해 남서부에 위치한 센카쿠 열도는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지역으로 최근까지 양측의 선박과 해양경비대간 충돌이 이어져 왔다.
다만 그는 양국이 앞으로도 정상을 포함해 다양한 레벨에서 의사소통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면서 “일본과 중국이 전략적 호혜관계를 포괄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전략적 호혜관계는 2006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을 만나 합의한 내용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 문제 등 풀어야 할 현안이 있지만, 경제 등 공통 이익을 축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의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역사와 대만 등 중대한 원칙적 문제는 양국 관계의 정치적 기반과 관련된다”며 “일본은 반드시 신의를 지켜 중일 관계의 기초가 훼손되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중일 경제이익과 산업망·공급망은 깊숙이 연결돼 있다”며 “‘작은 뜰에 높은 담장’을 만들거나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NHK는 양국이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중일 관계’ 구축을 위해 모든 차원에서 긴밀히 의사소통을 거듭해 나가는 한편, 녹색경제와 의료·돌봄 등의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고위급 경제대화를 적절한 시기에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논의와 함께 양국간 무역·경제 협력 증진을 위한 실무 협의도 진행됐다. 양국은 통상 당국 간 중요 광물 관리 등 무역 대화 채널을 신설하고, 기업인들의 안전 확보를 포함한 비즈니스 환경에 관한 협의체를 창설할 방침이다. 정상회담에 앞서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 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이 대화채널 신설에 합의했다. 중국은 지난 7월 갈륨과 게르마늄, 10월에는 흑연에 대한 수출 통제를 발표한 바 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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