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시대 보험, ‘종합컨설팅’으로 살아남을 것”[헤경이 만난 사람-허창언 보험개발원장]
데이터 집적·요율산출로 신시장 발굴추진
자율주행·전기차 신시장지원 7개팀 증설
실손청구 간소화 중계기관 선정 자신감도
“보험산업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성장 동력과 생산성 향상 등이 절실하며, 이에 대한 해법을 인슈어테크에 기반한 디지털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은 취임 1년을 맞아 최근 헤럴드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새로운 디지털 환경은 혁신 기술과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에 직면한 보험산업의 생존전략을 이같이 제시했다. ‘디지털’과 ‘데이터’를 두 축으로 보험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보험산업이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 분석, 사물인터넷(IoT), 인슈어테크 등을 보험산업 전반에 접목하는 보험 패러다임의 혁신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며 1시간 이상 진행된 인터뷰 내내 강도 높은 혁신 의지를 강조했다.
허 원장은 사실 보험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보험정책 전문가다. 1987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뒤 1999년부터 금융감독원에서 보험감독국 인허가팀장, 보험총괄팀장, 보험감독국장, 보험담당 부원장보 등을 역임했다. 이후 금융보안원장,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을 거쳐 지난해 11월 제13대 보험개발원장에 취임하면서 다시 보험업계로 돌아왔다.
지난 1년새 보험업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4년간 묵혀있던 업계의 숙원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가 하면, 새 회계제도(IFRS17)와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시행되며 실적 논란이 확산하기도 했다. 고령화·저출산 등으로 인한 구조적 환경 변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이에 대해 그는 “현재 보험산업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보험수요 감소,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지속, IFRS17 시행 초기 혼란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여기에 4차 산업혁명으로 시작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혁신기술은 이미 산업 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이종(異種) 산업 간 결합이 확대되는 등 디지털 환경 변화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및 보험시장 포화에 따른 성장 정체에 대해서는 현재 우리 보험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꼽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험료 비중을 의미하는 보험침투율이 지난해 11.1%로 세계 7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현재의 시장포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허 원장이 생각하는 보험개발원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위기 해결 방안과 같은 지점에 있다. 디지털과 데이터를 새로운 보험산업의 성장동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전방위로 지원하는 ‘종합 컨설팅사’가 그것이다. 보험개발원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보험개발원의 주요 사업인 보험요율 산출이 머지않아 AI가 대신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서다.
그는 “보험개발원이 살아남으려면 컨설팅을 해야 한다. 회계, 언더라이팅(보험 계약 심사), 마케팅까지 종합적으로 컨설팅 하겠다”며 우선 보험산업의 디지털 전환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IFRS17 결산시스템 ‘ARK’, 자체위험·지급여력평가체제 ‘ORSA’ 등 보험회계 지원 수준을 넘어서 자동차수리비 온라인서비스 플랫폼(AOS), 재난안전의무보험 종합정보시스템 등 보험가입부터 손해사정, 보험금 청구까지 보험업무 전반에 걸친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겠다는 포부다.
디지털 전환은 해외 진출의 물꼬를 트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험개발원이 개발한 요율산출 및 보험계리, AOS 등 인프라에 관심을 갖고 상호 교류를 하자는 국가들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달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에 ‘보험개발원표’ 인프라가 본격 수출된다.
허 원장이 차세대 성장동력이자 보험서비스 혁신의 무기로 꼽는 데이터 역시 신시장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위험에 대한 데이터 집적 및 요율산출 등을 통한 신상품 개발 지원도 그 일환이다. 재난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로 재난배상책임보험, 다중이용업소화재배상책임보험, 중고차성능사태점검책임보험 등 각종 의무보험이 도입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요율을 제공하고 있다.
또 최근엔 반려동물 양육가구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연령·품종별로 세분화된 펫보험 요율을 산출하고, 객관적 지표를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 보험 상품을 개발·제시하며 새로운 시장 발굴을 지원하고 있다. 자율주행 실외이동로봇보험, 드론보험, 전기차충전소보험 등 가입이 의무화되는 보험에 대한 참조순보험요율도 지속적으로 산출, 제공할 예정이다.
기술변화에 따른 신시장 발굴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IoT, 빅데이터 등 기술혁신을 보험에 접목하기 위한 인슈어테크팀, 자율주행, 전기차 등 기술발전에 대응하는 모빌리티지원팀, 새로운 위험보장 수요에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한 신시장지원팀 등 7개팀을 증설했다.
허 원장은 “보험정보 빅데이터 플랫폼, 보험산업의 통합 디지털 인프라 구축 등을 중점 추진함으로써 보험산업이 더욱 고도화된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연내 선정 예정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 후보로 보험개발원이 거론되는 데 대해서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는 환자가 보험금을 청구할 때 종이서류 분실, 설계사 대리청구 등에 따른 환자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며 “청구서류를 표준화된 전자문서 형태로 전송하게 되면 오히려 종이서류 형태보다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자문서로 전송하는 경우 해킹 등의 보안 위험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보험개발원은 자체적인 보안 노력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보안 검증도 충실히 받고 있다”며 “그간 집적된 대량의 보험정보를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관리해오고 있는 점 등에서 보듯이 보안위험을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기관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허 원장은 국내 보험사들이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던 다보스포럼의 창시자 클라우스 슈밥의 메시지를 언급하며, 위기감을 갖고 보험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을 거듭 주문했다.
“그동안 산업혁명에 성공한 나라들이 패권을 잡았습니다. 1차 산업혁명은 영국, 2차와 3차 산업혁명은 미국이었죠.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고 IT 인프라는 우리가 세계 최고입니다. 다른 곳은 자갈 길을 달리는데, 우리는 고속도로가 깔려있는 셈이죠. 미국 같은 금융강국처럼 앞을 내다보고 디지털·데이터에 주력해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정리=강승연 기자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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