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작게" 특별한 기저귀 만들었더니…3만쌍 넘는 부모 웃었다[르포]

대전=김성진 기자 2023. 11. 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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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 대전공장, '두달에 한번' 이른둥이용 기저귀 생산
타제품 생산 '올스톱'...그날 하루 생산 케파는 30% 이상 떨어져
그렇게 생산한 기저귀 '기부'...17일 세계 이른둥이의 날도 기부 예정
지난 9일 유한킴벌리 대전 공장에서 이른둥이용 기저귀가 만들어져 컨베이어 밸트를 지나는 모습. 만들어진 기저귀는 기부된다. 제품 포장재 앞면에 '병원용/비매품'이라 적혀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기저귀를 한팩, 한팩 만들 때마다 유한킴벌리에는 손해였다. 유한킴벌리는 두달에 한번 날을 정해 다른 제품 생산은 전부 중단하고, '이른둥이용 기저귀'를 생산한 뒤 이른둥이를 낳은 전국 부모들에게 기부한다. 하얀 비닐소재 포장재 앞면에 '병원용/비매품'이라 적혀 있다.

17일 세계 이른둥이의 날에 기부하는 수량까지 합치면 유한킴벌리가 2017년부터 올해까지 기부한 기저귀는 500만 패드를 넘고, 수혜받은 부모는 3만3000쌍이 넘는다.

이른둥이는 임신 37주 이내에 태어나거나 생후 몸무게가 2.5kg보다 안 나가는 신생아를 말한다. '미숙아'란 말이 더 널리 쓰이지만, 이들을 미숙아라 부르면 어딘가 부족한 아기들로 비칠 수 있어 유한킴벌리는 이른둥이란 용어를 쓴다.

이른둥이는 몸집이 작다. 일반 기저귀가 몸에 맞지 않아 배설물을 받아내지 못하고, 가랑이가 벌어져 체형이 변할 수도 있다. 아기 피부는 안 그래도 예민한데 기저귀에 쓸려 다칠 수도 있다.

이른둥이가 머무는 신생아 집중 치료실 NICU 간호사들은 배꼽이 닿는 기저귀의 윗 부분을 자르거나, 접어서 사용했다. 그래도 일반 기저귀는 이른둥이에 맞지 않았고, 안그래도 할일이 많은 NICU 간호사들은 이 작업으로 업무 부담을 크게 느꼈다.

2011년 한 NICU 간호사가 유한킴벌리로 "더 작은 기저귀를 만들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유한킴벌리는 전국 산부인과를 300곳 넘게 조사해 국내에 이른둥이 전용 기저귀가 없어 간호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게 됐다. 당시에도 산모들의 출산 연령이 높아지고, 시험관시술이 늘어나 이른둥이 출산이 많아지고 있었다. 전체 신생아에서 이른둥이 비중은 2009년 5%에서, 올해 8% 수준으로 늘어났다.

유한킴벌리는 3년을 투자해 첫 이른둥이용 기저귀를 만들었다. 생산 설비를 개조해 기저귀를 작게 만드는 것도 어려웠지만, 이른둥이가 사용해도 문제가 없도록 전국 NICU를 돌아다니며 간호사들의 피드백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기저귀를 인큐베이터 안의 이른둥이에 직접 테스트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피드백에 큰 신경을 썼다고 한다. 간호사들은 "이른둥이는 다른 신생아보다 피부가 얇아 소재가 더 부드러워야 한다", "매일 체중을 재며 회복 상태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기저귀 무게가 일정하면 좋겠다"는 등 피드백을 했다.

일반 신생아용 기저귀(왼쪽)와 이른둥이용 기저귀(오른쪽)./사진=김성진 기자.

그렇게 만든 이른둥이용 기저귀는 한눈에 봐도 신생아용 기저귀보다 작다. 체중이 2.2kg보다 가벼워도 쓸 수 있게 만들었다. 또 이른둥이는 일반 신생아보다 피부가 예민하고 장염에 걸릴 위험이 높아 사탕수수 바이오매스 소재와 판테놀 함유 로션 등으로 기저귀를 만들었다.

일반 기저귀보다 작기 때문에 이른둥이용 기저귀는 생산할 때 더 정밀한 공정이 필요하고, 하나당 생산 속도가 30% 이상 낮다. 여기에 생산 전후 준비를 해야 하고, 품질관리까지 해야 하므로 이른둥이용 기저귀를 생산하는 날은 유한킴벌리에 손해가 크다. 시장도 작고, 개발·생산 부담에 아직 국내에서 이른둥이용 기저귀를 만드는 회사는 유한킴벌리밖에 없다.

그런데도 유한킴벌리가 이른둥이용 기저귀를 생산, 기부하는 것은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머무는 이른둥이들 문제가 소수 부모님이 안고 갈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란 점을 자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한킴벌리의 류진호 기저귀&팬티 마케팅 팀장은 2017년 이른둥이를 직접 낳았다. 그는 이른둥이를 낳은 부모가 드는 생각은 두 가지 '아이가 또래처럼 잘 클까'와 '우리 잘못으로 아이가 빨리 나왔구나'라고 한다.

2017년 이른둥이를 낳고, 지금은 이른둥이용 기저귀를 비롯해 기저기와 팬티 제품 마케팅을 맡는 류진호 유한킴벌리 팀장./사진=김성진 기자.

유한킴벌리가 이른둥이용 기저귀를 만들기 전까지 병원 신생아 집중 치료실은 '기저귀를 마련해오라'고 부모들에게 요구해왔다고 한다. 이른둥이를 낳을지 몰랐던 부모는 그제야 이른둥이가 배변을 해결하는 방법을 검색하고, 기저귀를 오려서 보냈다고 한다. 류 팀장도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처음 본 아기의 모습은 인큐베이터에 실려 멀어지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당시는 유한킴벌리가 이른둥이용 기저귀를 기부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이 기저귀의 도움을 많이 본다"며 "더 많이 기부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른둥이용 기저귀의 정식 명칭은 '하기스 네이처메이드 이른둥이용 기저귀'다. 언젠가 한 산모가 자신의 이른둥이가 NICU에서 퇴원한 날 하기스 카카오스토리에 "감사하다", "흔히 미숙아라 부르는데 하기스가 내 이른둥이 아기를 인정하고, 이름 불러주고, 지원해준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댓글을 남겼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저출산 시대에 태어나는 아기 수가 적다는 것에 주목할 게 아니라, 우리가 이른둥이용 기저귀를 만들듯 태어난 아기들을 소중하게, 건강하게 키워가는 것에 집중할 때,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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