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듣되 실제와 일치하면 그때 믿어라[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한비 ‘한비자’
말한 이의 도덕성 검증않고 믿으면 십중팔구 화를 면하지 못해
못된 말들이 활개 치는 데는 듣는 이들 책임도
말에는 본래 뿌리가 있어 뿌리를 잃어버린 말은 말로 쳐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젠 말에는 뿌리가 없다고 하는 편이 현실에 한결 부합할 듯싶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슬쩍만 봐도 말이 뿌리와 붙어 있던 시절보다는 뿌리를 팽개치고 멋대로 나돌아 다닌 시절이 훨씬 더 길었으니 말이다.
공자 때도 그러했다. 실제 역량과 무관하게 말만 잘하면 너끈히 출세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교묘한 말이 도덕을 문란케 하였고, 그럴싸한 말주변이 없으면 화를 피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러한 세태는 공자 이후로도 수백 년간 지속되었다. 급기야 “유언비어가 사뭇 많은데도 사실 여부를 살피지 않은 채 서로 헐뜯거나 추켜올리는 데 힘썼고, 헐뜯고 추켜올리면서 파당을 이루었다. 온갖 말들이 하늘까지 가득하여 유능함과 무능함이 구분되지 않는”(‘여씨춘추’) 혼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자를 위시하여 적잖은 제자백가들이 “찰언(察言, 말을 살피다)” “지언(知言, 말을 따져 알다)”과 같은 말 듣기 역량의 구비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말을 살피고 따져 안다는 것은 발화된 말의 뿌리가 있는지, 있다면 말이 그 뿌리와 부합하는지 등을 헤아려본다는 얘기다.
공자는 말의 뿌리로 실천, 곧 행위를 꼽았다. 언행이 일치되면 그 말은 참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 말은 못된 것이라고 여겼다. 행함에 기초하여 말을 하든지, 말부터 먼저 하였다면 반드시 말한 대로 행하여야 한다는 사유였다. 그가 보기에 말은 참되어야 자신에게도 또 세상에도 도움이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말은 반드시 실천이란 도덕 역량과 결합하여야 했다. 따라서 말을 살피고 따져 안다고 함은 말한 이의 도덕 역량을 검증하는 것이 된다. 말만으로는 그 사람을 알거나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니, 말만 듣고 그 사람의 도덕성을 믿는다면 십중팔구 화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며 경고했다.
물론 말을 도덕 역량과 결부하는 공자의 관점이 우리 사회에선 그다지 통용될 것 같지는 않다. 언제부턴가 일만 잘하면 위장편입 같은 법적, 도덕적 일탈이 무슨 문제이겠냐는 태도로 고위공직자 임용이 강행되었고, 그러한 풍조가 지속되다 보니 공적 영역에서는 도덕 역량이 가뿐히 경시되고 있다. 사실 이득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다소라도 더 편해질 수 있다면 도덕적 문제 따위엔 기꺼이 눈감을 수 있다는 태도가 깊고도 넓게 퍼진 지도 꽤 되었다. 말하기에 대한 공자의 경고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이다.
그러면 한비자의 제언은 어떠한가? 그는 도덕 역량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실제로 행한 일의 성과만을 말의 뿌리로 삼았다. 참된 말과 못된 말을 가르는 기준은 말과 실제 행한 결과의 일치 여부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의 말을 들을 때도 그가 한 말과 실제 행한 결과를 대조해본 후 일치하면 그때 믿어야 했다. 그는 말을 듣고서 실제 결과와 맞추어 보지 않으면, 책임을 추궁할 수 없게 되어 간사한 말들에 의해 점령된다고 보았다. “말을 듣되 실제와 대조해보지 않으면 권력이 간악한 자에게 나누어진다”(‘한비자’)고도 확언했다. 못된 말들이 활개 치는 데는 듣는 이들의 책임도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듣기 역량을 갖추고 이를 제때 발휘했다면 그러한 적폐가 일상이 되는 일은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이미 지난 세월 숱하게 경험했듯이 정치인에게 뿌리를 갖춘 말을 요구해봤자 말짱 헛일이다. 그들은 오히려 대놓고 뿌리를 갖춘 말을 꺼려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주권자인 시민이 이를 방기하고 용납할 수는 없다.
그들이 내뱉는 못된 말이 세상에 횡행하면 할수록 시민의 이익과 행복은 줄어들 것이 빤하기에 그렇다. 하여 시민만이라도 말 듣기 역량을 최대한 갖추고 이를 적극 발휘해야 한다.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내년 총선 모드로 돌입했으니 더욱더 그리해야 한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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