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담 속에선 식물·동물 모두와 소통… 참 근사하죠”[북리뷰]

박세희 기자 2023. 11. 1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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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단 후 첫 어린이책 낸 황석영
해님달님·우렁각시 등 5권내놔
민담 시리즈로 50권 출간 예정
“열녀·효부 등 시대 맞게 각색
손주에 들려주듯 이야기 풀어
어린이가 뿌리찾는 과정 되길”
‘이야기 할아버지’를 자처한 황석영 작가가 지난 14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가지며 환한 얼굴로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을 들어 올리고 있다. 백동현 기자

“지금은 성인이 된 손녀가 둘 있는데 어릴 적 할아버지 노릇을 잘 하지 못했어요. 한 시대의 할아버지로서,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 할아버지’ 노릇을 하려 합니다.”

1962년 등단한 이후 60여 년간 한국 문학을 대표해온 작가 황석영이 처음으로 어린이책을 냈다.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휴먼큐브) 시리즈가 그것. 1권 ‘우리 신화의 시작’을 시작으로 2권 ‘연오랑과 세오녀’, 3권 ‘해님 달님’, 4권 ‘우렁각시’, 5권 ‘지하 마왕과 한량’까지가 이번에 출간됐고, 이후 순차적으로 출간돼 총 50권으로 선보인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 만난 황 작가는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화롯가에 앉아 밤 구워 먹으면서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며 “이런 모습들을 내가 다시 한 번 환기시켜 보면 어떨까 했다. 할아버지로서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해주는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민담’은 황 작가가 써온 작품들 전반에 흐르는 하나의 흐름이기도 하다. 무속신화 ‘바리데기’를 재해석한 소설 ‘바리데기’(2007), 고전 민담 ‘심청’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바꾼 ‘심청’(2003) 등, 작가는 우리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써왔다.

이번 민담 시리즈 역시 작품 집필을 위해 모아놓은 민담 모음에서 시작됐다. 서재를 정리하던 중 민담 정리 노트 20여 권이 담긴 상자 하나를 발견한 것. 그게 3년 전이다. 그때부터 시작해 수만 개에 달하는 전국 각지의 민담들 중 책으로 낼 이야기 150편을 가려내는 작업이 이어졌다. “우선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해님 달님’과 같은 이야기들을 먼저 선정했고 각 지역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골라 하나로 합치거나 나누는 등의 작업을 했습니다. 어린이가 보면 좋아할 만한 환상적인 이야기와 모험,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주로 골랐어요.”

현대의 정서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들은 과감히 손을 봤다. 여성에 대한 표현이 그 예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11권에 수록될 ‘지네각시’의 경우, 남편을 헌신적으로 받들어 모시며 남편의 마음을 얻는 지네각시를 사업가적 기질을 지닌 능동적인 모습으로 바꿔 표현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요. 지금 우리의 가치관과 너무 맞지 않는 이야기는 아예 배제했고 고쳐서 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내용을 확 바꿔 담았습니다. 열녀, 효부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변화시켰지요.”

그는 어린이들이 지금 우리의 민담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방향을 잃지 않고 차이를 이해하며 세계와 어울릴 수 있고, 그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민담”이라는 것. “이제 한반도를 넘어 세계시민이 될 어린이들이 우리 이야기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는 우리 어린이들이 세상과 만날 때 필요한 새로운 장비가 될 것입니다.”

작가는 “민담 속 세상은 참 아름다운 세계”라고 강조했다. “민담 속에선 식물, 동물 모두와 소통합니다. 우렁이가 각시가 되기도 하니까요(웃음). 또 하나 민담이 갖고 있는 근사한 점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계지요.”

올해 여든인 작가는 최근 사람이 아닌 것들, 나아가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들 간의 관계를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다고 했다. 민담 속 세계와도 상통하는 주제다. 그가 쓰고 있는 차기작 역시 사람이 아닌 나무의 이야기. “나무를 중심으로 한 서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군산에 650년 된 팽나무가 있어요. 가끔 그 나무를 보러 다녀오곤 하는데요, 나무가 자기의 생애를 스스로 이야기하는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그 후 두세 편 정도 더 쓰면 아흔 살이 되지 않겠어요? 그때까지만 쓰려 합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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