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벼랑끝에 선 인류… ‘이주 시나리오’를 준비하라[북리뷰]

유승목 기자 2023. 11. 1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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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에서 단골로 그려지는 인류 멸종 시나리오가 몇 있다.

핵전쟁·바이러스 등이 떠오르지만, 대멸종의 페이지로 이끄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기후의 변화다.

6600만 년 전 공룡을 멸종으로 내몬 건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소행성의 충격파가 아닌 막대한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기후변화가 몰고 올 앞날에 대한 전망은 꽤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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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엑소더스
가이아 빈스 지음│김명주 옮김│곰출판

영화나 소설에서 단골로 그려지는 인류 멸종 시나리오가 몇 있다. 핵전쟁·바이러스 등이 떠오르지만, 대멸종의 페이지로 이끄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기후의 변화다. 6600만 년 전 공룡을 멸종으로 내몬 건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소행성의 충격파가 아닌 막대한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기후변화가 몰고 올 앞날에 대한 전망은 꽤 끔찍하다. 물에 잠긴 도시, 생물 다양성 붕괴, 견딜 수 없는 폭염, 광범위한 기아가 뒤덮은 세상은 우리가 수십 년 내에 도달하게 될 지점이다. 기후변화의 현장을 발로 뛰며 학술지 ‘네이처’의 선임 편집자로 활동하는 저명한 과학작가인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가 ‘기후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확신하지만 경종을 울리는 이 표현조차도, 이 재앙의 엄청난 규모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

책은 21세기를 ‘지구 가열화 세대’라고 설명한다. 나라마다 기온 상승 억제를 외치지만, 이대로라면 이번 세기에 지구 온도가 평균 3∼4도 상승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문제는 닥쳐올 재난 앞에서 인류는 옛 공룡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유럽과 미국을 덮친 산불이 1년 내내 꺼지지 않고, 기온이 치솟아 수천 명이 온열 질환에 걸려도 뾰족한 방책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 현실이다. 마치 ‘묵시록의 4기사’처럼 기후변화로 나타날 재앙인 화재와 폭염·가뭄·홍수가 인류를 괴롭힐 것이라는 책은 “그 결과 많은 이가 목숨을 잃고 어쩌면 문명이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무거운 메시지를 전하지만 저자의 시선이 염세로 향하지 않는 점은 책의 다음 페이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행동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책은 기후변화로 촉발되는 새로운 생태계를 그려보고, 생존의 대안을 모색한다. 앞으로 4도 상승한 세계에선 사하라 사막의 모래는 유럽까지 뻗치고 동아시아도 강물이 메말라 수백만 명이 터전을 잃게 되지만, 동시에 바다와 얼음이 사라진 북서항로가 새로운 교통망을 형성하고, 불모지였던 시베리아와 그린란드, 남극대륙이 기존의 도시를 대체하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해법도 어렵지 않다.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비상구는 ‘이주’다. 난민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대이동이 안보를 위협하고,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적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지만, 저자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생존도구인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스스로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세계 인구 대부분이 살고 있는 지역이 황폐화되고, 사람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야 하는 ‘기후난민’이 일상화되는 시대에서 합법적이고 계획적인 이주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환경론자처럼 경제활동을 멈추자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선을 긋고 이주를 통한 경제적 시너지로 지구를 회복해야 한다는 저자의 통찰은 기후위기에 따른 인류 멸망이 아닌 새로운 생존 시나리오를 써내려간다. 384쪽, 2만2000원.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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