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글씨부터 ‘묵칠금자’까지…광화문 현판 우여곡절18년
‘군사독재의 얼룩 광화문 현판 바뀐다’
2005년 1월24일, 한겨레신문 1면에 이런 큰 제목을 단 단독기사가 보도되자 문화재판과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씨가 청장을 맡고 있던 문화재청이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의 하나로 그해 8월15일 광복절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현판을 내리고 조선 정조임금의 글씨를 따서 모은 새 광화문 현판을 바꿔 걸기로 정해 준비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이다. 지난달 15일 복원된 광화문 월대와 함께 새 현판이 제막되기까지 말 많고 탈 많고 바람 잘 날 없었던 광화문 현판 교체를 둘러싼 곡절의 과정은 이렇게 18년 전 한겨레의 보도로 막을 올리게 된다.
광화문과 연고가 없는 독재자의 필적을 내린다는 것은 역사바로세우기의 차원으로 해석됐지만 보수 정치권은 정치적인 의도가 깃든 역사 지우기라고 주장하면서 격렬한 공방이 일어났다. 경복궁이 불타 사라진 시점에 재위한 정조임금은 고종 때 중건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인물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역사적 명분 아래 현판 교체를 추진했다가 정치적 공방으로 비화하면서 궁지에 몰린 문화재청은 중건 당시 원래 현판의 원형 찾기를 대안으로 꺼내 들었다. 한국전쟁 때 불타 사라진 옛 광화문 현판의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을 이후 1달여간 집요하게 디지털 분석해 원래 글씨의 윤곽을 찾아냈고, 글씨를 쓴 이도 세간에 알려졌던 정학교가 아닌 당대 훈련대장 임태영이라는 사실까지 파악했다. 외국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첨단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현판 글씨의 복원 사례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문화재계의 여론은 콘크리트 광화문을 원래대로 석축과 목구조 전각으로 복원되는 시점에 현판도 교체해 걸라는 쪽으로 모아졌고, 현판 교체의 시기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간다.
결국 임태영 글씨의 새 현판은 2010년 8월15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광화문 복원 낙성식에서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선보였으나 이명박 정부의 특징인 속도전이 결국 화근이 되었다. 당시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의식해 문루는 물론 현판 제작, 현판 바탕색과 글씨의 고증은 정교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복원 건축물이 낙성된 지 석달 만에 부실제작으로 현판에서 균열이 발견된데 이어 흰 바탕색에 검은 글자로 복원한 것도 고증오류로 바탕색과 글자 색깔이 거꾸로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급기야 2016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 1893년 본 사진에서 현판의 바탕색이 글자보다 훨씬 진한 물증이 나오자 문화재청은 실험용 현판 8개를 만들어 부착실험까지 하는 곡절을 치르면서 2018년 1월 다시 바탕색을 정반대로 바꾸는 교체방침을 발표하는 등 혼선을 거듭했다. 2010년 흰 바탕 현판의 복원 교체 결정을 내린 문화재위원회와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문화재복원 사상 역대 최악의 결정을 내리고 실행했다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논란을 종식시킨 건 2018년 일본 와세다대 고문서고에서 발견된 경복궁 영건일기란 문건이었다. 검은 바탕에 금도금 된 동제 글자판을 붙인 현판의 공사기록이 확인되면서 비로소 복원의 방향이 잡히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밝힌 것은 문화재청 당국이나 정치권이 아니라 묵묵히 연구에 몰입했던 미술사학계 소장학자 김민규씨였다.
그는 학계의 풍문을 듣고 2018년 8월 일본 와세다대에 있는 영건일기 9책 완질을 찾아내 광화문 현판 색상이 검정 바탕에 금색 글자임을 뜻하는 ‘묵질금자(黑質金字)’라는 기록을 확인하고, 불과 2주만에 관련 논문을 학술지 ‘고궁문화’에 기고해 복원의 중요한 전기를 만들어냈다.
김씨뿐만이 아니었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한일관계사 전문가인 원로학자 정재정 서울시립대명예교수도 한일공동역사연구 모임에서 알게 된 일본인 학자와 2017년 함께 일본 답사 중 목욕탕에서 담소를 하다 영건일기의 존재를 전해 듣고 긴급히 현장 조사를 하게 된다. 정 교수는 국역 작업에 착수해 결국 2019년 6월 국역본을 서울역사편찬원에서 펴내기에 이른다. 이렇게 뒤늦게 현장 연구자들의 활약으로 현판의 세부는 온전한 복원이 가능해졌다. 연구자들이 문화재당국과 정치권의 공방 속에 표류하던 현판 교체 논란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바로 세운 셈이다.
새 현판이 월대와 함께 안착한 데는 지난해 5월 취임한 최응천 청장의 의지도 한몫을 했다. 국립박물관 학예사시절 스승처럼 배웠던 선배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이 현판 균열로 큰 곤욕을 치렀던 전례를 봤던 그는 월대 복원을 계기로 온전한 광화문 현판의 복원까지 비장한 각오를 갖고 밀어붙였다고 떠올렸다.
지금도 왜 한글 아니고 한자로 복원했느냐란 지적부터 원본 없는 디지털 복원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까지 논란이 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첨단 디지털 복원의 방식까지 써서 21세기의 시대성을 반영한 현판이 나왔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역사적 명분과 정의를 내세우더라도 충실한 역사적 고증이 없으면 뒤탈이 난다는 것을 광화문 현판의 논란사는 보여준다. 다시는 현판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둘러싸고 재교체 논란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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