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등장한 스님의 사찰음식과…백양사 템플스테이의 진면목

유준 여행플러스 인턴기자(peteryoo114@gmail.com) 2023. 11. 17. 08: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며 강의하는 정관 스님 / 사진=유준 여행+ 기자
출퇴근길 ‘지옥철’은 이제 당연한 일상이 됐다. 사람들 사이 끼어있는 것은 참을 만하다. 괴로운 것은 그들이 내뱉는 고통과 분노다. 듣다 보면 모든 것이 미워진다. 그러다 모든 것에게 미안해진다. 매일 긴 한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쉼’이 필요하다.

아기단풍으로 유명한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白羊寺)를 지난 10일 오후에 찾았다. 천진암(天眞庵) 암주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을 맛보고 주지 무공 스님과 차담을 나눴다. 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가 맺어준 인연이다.

백양사 쌍계루 풍경 / 사진=유준 여행+ 기자
호남 불교의 요람 천년고찰 백양사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에 출연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정관 스님이 있는 절이다. 스님의 사찰음식을 통한 수행에 동참하는 템플스테이가 매달 열린다.

템플스테이는 일반적으로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는 ‘체험형’과 편히 머물다 가는 ‘휴식형’으로 나뉜다. 체험형은 새벽예불, 108배, 스님과의 차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휴식형을 택해도 원하면 예불과 차담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사찰음식 특화 사찰인 백양사는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 수행’ 템플스테이를 별도 운영 중이다.

전각 너머 보이는 백암산 / 사진=유준 여행+ 기자
절에 도착하니 단풍은 폭우로 거의 지고 없었다. 멀리 보이는 백암산 봉우리가 괜찮다며 위로해 준다. 위풍당당한 모습이 쉽게 변치 않는 것의 가치를 알려주는 듯하다.

사찰 방사는 넓고 깨끗했다. 욕실도 여느 숙소보다 깔끔했다. 1박 2일 일정 동안 사용할 수련복과 침구에선 좋은 향기가 났다. 손님을 맞이하는 백양사의 정성이 느껴졌다.

백양사 템플스테이 건물 / 사진=유준 여행+ 기자
백양사 템플스테이 방사 / 사진=유준 여행+ 기자
입소식을 마친 뒤 천진암으로 올라 정관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마당의 20년 넘게 숙성된 된장과 간장을 맛보여 주며 그는 자연스레 자연의 신비를 일깨워 줬다.
백양사 위쪽에 있는 천진암 / 사진=유준 여행+ 기자
환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이하는 정관 스님 / 사진=유준 여행+ 기자
실내로 이동해 스님의 음식 철학에 대해 들었다. 정관 스님은 “사찰음식은 몸과 정신을 연결할 수 있다”며 “발우공양을 통한 인간성 회복과 자연성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스님은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석가모니의 탁발에서부터 시작한 수행자의 식사 방식을 복원하기 위해 스님은 애쓰고 있다.

정관 스님은 연 11~13회의 해외 일정을 소화한다. 참가자는 각자 식기를 챙겨와 음식을 3종만 해서 먹는다. 삶은 취나물, 건조 애호박을 정관 스님이 준비하고, 나머지 하나는 현지 재료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음식 자체보단 음식을 만들기 위한 정신적인 부분에 집중한다”는 정관 스님은 잠시 말을 멈췄다. 일상이 곧 수행인 불교에선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과정도 수행의 일부다. 사찰음식 체험을 함께하는 이들이 눈물을 터뜨리곤 한다며 많은 이들이 음식을 통해 자신과 대화를 하며 감동하는 것 같다고 스님은 전했다.

스님은 또한 ‘지속 가능한 음식’을 추구한다고도 말했다. 무릇 생명을 존중하며 음식을 만드는 태도는 기후 위기 극복에도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스님은 “사찰음식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확신했다.

본격적으로 스님의 조리 과정을 직접 보고 음식을 맛봤다. 조리 중에 스님은 계속 재료와 조리법에 대해 설명했다. 스님은 토란국, 샐러드, 표고버섯 조청 조림, 가죽나물 장아찌, 열무 무침, 느타리버섯 브로콜리 무침 등의 음식을 내어줬다.

전과 샐러드 / 사진=유준 여행+ 기자
토란국 / 사진=유준 여행+ 기자
표고버섯 조청조림 / 사진=유준 여행+ 기자
하나같이 자연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스님이 직접 담근 감식초, 오미자청 등 양념이 오랜 기간 숙성된 간장, 된장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다. 자연의 섭리를 체화한 정관 스님의 정성 어린 가르침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물, 밥, 국 한상차림 / 사진=유준 여행+ 기자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표고버섯 조청 조림이었다. 여기엔 스님의 인생 사연이 담겨 있었다. 정관 스님은 출가 7년 만에 집에 연락했다. 한 20명이 찾아와 집에 데려가려 했는데, 가지 않았다.

이후 스님의 아버지가 혼자 찾아와 보름 정도 머물렀다. 아버지는 ‘절에 고기도 생선도 없는데 어찌 살겠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우리도 맛있는 음식이 있다’며 표고버섯 조청 조림을 만들고 아버지를 계곡으로 모셨다.

아버지가 맛보고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나’ 하며 감격했다. 이후 부녀는 서로 얘기를 나누며 마음속 응어리를 풀었다. 안심한 아버지는 딸에게 삼배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운명했다. 눈을 감기 전까지 스님의 아버지는 ‘아무리 가족이어도 스님에게 삼배하고 예절을 갖춰라’라고 주변에 당부했다고 한다.

정관 스님은 “음식으로 응어리를 풀고 인연 관계를 순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사람들이 같이 먹고 마음속 섭섭함을 풀면 좋겠기에 표고버섯 조청 조림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번 이 사연을 말했을 텐데 스님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듣는 이의 가슴도 뭉클해졌다.

강의하는 정관 스님 / 사진=유준 여행+ 기자
스님이 준비한 후식까지 먹고 암자를 나서자 어느덧 주변이 깜깜해졌다. 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빛났다. 다니는 이들도 없어 고요한 가운데 계곡물 흐르는 소리만 졸졸 들렸다. 방사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만감이 교차했다. 백양사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방사 안에서 맞는 밤은 생각보다 더 추웠다. 온돌이 있었는데도 깊은 산중이라 한기가 올라왔다. 겨울 즈음 템플스테이를 찾는다면, 두터운 겉옷 외에 수련복 속에 받쳐 입을 옷을 챙기는 것을 권한다.

새벽의 백양사 대웅전 / 사진=유준 여행+ 기자
이튿날 동이 트기 한참 전인 4시 반에는 새벽 예불, 5시에는 싱잉볼 명상 시간이 열렸다. 하지만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불자는 아니어도 꼭 가고 싶었지만, 새벽 기상은 어려웠다. 참여하지 못한 것에 스스로 원망스러운 마음이 잠시 들었으나, 그러면 이곳에 온 목적을 잃는 것 같아 떨쳐냈다.

체력에 자신 있는 ‘아침형 인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기자처럼 ‘저질 체력’의 현대인이라면 체험형과 휴식형을 선택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체험형 템플스테이는 가까운 절에서 참여하고, 거리가 있는 사찰에선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참가하면 좋을 듯 하다. 정관 스님 사찰음식 수행처럼 꼭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전날부터 도착해 몸 상태를 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백양사 아침 공양 / 사진=유준 여행+ 기자
백양사 점심 공양 / 사진=유준 여행+ 기자
오전 6시 아침 공양 이후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과의 차담을 가졌다. 무공 스님은 별다른 일정이 없는 한 항상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을 찾아 담소를 나눈다고 한다.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 / 사진=유준 여행+ 기자
스님은 “말없이 차만 마셔도 된다”며 좌중을 편안하게 해줬다. 차를 마시며 무공 스님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천천히 걷고 말하는 연습을 하면 화를 누그러뜨리고 자신을 제어하기 좋다”고 조언했다.

또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며 무공 스님은 “다름만 있고 틀림은 없는 것인데 한쪽에서만 바라보니 시비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삶의 지혜를 전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은 사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 진정으로 나를 아낀다면 내 고통을 버리기 위해서라도 미움을 버려야 한다”고 무공스님은 말했다.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과 마스코트 ‘백양이’ / 사진=유준 여행+ 기자
이어 무공 스님은 “말에 베인 자는 10년이 지나도 낫기 어렵다”며 항상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차담을 마무리했다.
백양사 마스코트 ‘백양이’ / 사진=유준 여행+ 기자
백양사에서 조금 내려오면 보이는 강 / 사진=유준 여행+ 기자
백양사는 낮에는 은근히 북적이는 사찰이지만 오전과 저녁 시간에 오롯이 고요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무수한 별과 정겨운 물소리 역시 이곳을 잊을 수 없게 하는데 한 몫 했다. 무엇보다 정관 스님이 음식으로 전해준 가르침은 오래도록 가슴 속에 남을 듯 하다.

※ 취재협조 = 불교문화사업단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