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Canada!] 멸종위기 아메리카 들소 바이슨이 기사회생한 곳, 에드먼턴
캐나다 앨버타주의 주도 에드먼턴은 대부분의 북미 여행자들에겐 그저 거쳐 가는 도시다. 환승을 위해 하루 정도 머물면서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 정도다. 애초에 관광 도시도 아니다. 1800년대 모피 무역과 1947년 이후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을 기반으로 성장한 산업 도시다.
그렇다고 해서 호텔 로비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도처에 숨은 매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벽화로 새롭게 변신한 올드 스트라스코나의 사람 냄새 나는 작은 가게들, 캐나다의 옛 개척자들이 자연에 진 빚을 갚고자 노력하는 엘크아일랜드국립공원,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맛집까지 하루를 꽉 채워 빠르게 돌아봤다.
# 엘크아일랜드국립공원
캐나다 바이슨 산실
"저 여기 25번째 방문이에요. 하지만 '그건' 딱 두 번 봤습니다."
엘크아일랜드국립공원은 에드먼턴 중심가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 넓이는 약 194㎢로 지리산국립공원 전체 면적의 4배 정도 된다. 에드먼턴 주민들의 휴양지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전체 80km의 트레일을 걷거나, 거대한 아스토틴Astotin호수에서 카누를 타거나, 캠핑한다.
무엇보다 이 공원이 특별한 것은 바로 '바이슨' 때문이다. 이 바이슨을 보호하기 위해서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아예 국립공원 전체에 울타리를 둘렀다. 아메리카들소라고도 불리는 바이슨은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빛이 돌며 두껍고 뭉툭한 어깨, 덩치에 짧은 뿔이 특징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버팔로'와 다른 종이지만 현지에선 두 이름을 혼용하는 편이다.
바이슨은 캐나다 전역에서 목격되는 야생동물.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 대부분이 바로 이 엘크아일랜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는 비극적인 바이슨의 역사에 기인한다. 엘크아일랜드국립공원 관계자 트리스틴씨의 설명이다.
"유럽인들이 건너오기 전 북미 대륙에는 약 3,000만 마리의 바이슨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선주민들은 최소한의 바이슨만 사냥하며 이들과 조화를 이뤄 살고 있었죠. 하지만 유럽인들이 들어와서 말을 타고 총기로 바이슨을 대거 사냥하기 시작했어요. 가죽과 고기를 얻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단순히 스포츠로 사냥한 경우도 많았죠. 그 결과 1840년대부터 1870년대까지 바이슨 개체수가 급감했습니다. 3,000만 마리였던 것이 고작 수천 마리밖에 남지 않게 됐죠."
에드먼턴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1907년까지 주민들은 30년 넘게 바이슨을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바로 그때 1906년 엘크를 보전하기 위해 설립된 엘크아일랜드에 한 무리의 야생 바이슨 무리가 출현했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이를 구경하기 위해 공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바로 이 무리가 오늘날 엘크아일랜드에 형성된 바이슨 집단의 핵심이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 100년 동안 엘크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바이슨을 유전적 다양성과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전국 곳곳의 평원과 보호구역으로 옮겼다. 기록된 이송 조치만 해도 약 2,500건에 달한다. 그렇기에 캐나다에서 보는 바이슨은 모두 엘크아일랜드에서 온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문자 그대로 산실이다.
"현재도 엘크아일랜드국립공원은 바이슨 보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먼저 보호 및 연구시설을 지어서 매년 개체들을 검사하고 있어요."
트리스틴씨의 설명을 따라 방문한 시설은 마치 동그란 미로처럼 생겼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데 누군가 "쥐라기 공원"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에서 나오는 공룡 복원 시설들과 똑 닮았다. 여름에 바이슨이 너무 더워서 피할 곳이 필요하거나, 겨울에 먹이가 없으면 말을 이용해 무리를 이 시설로 몰아와 물이나 식량, 휴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시설 중앙에 있는 '스퀴즈 빌딩'에선 혈액검사, 치아검사를 진행한다.
마침 시설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바이슨 무리가 보인다. 거의 점처럼 보이는데 트리스틴이 조용히 소리를 들어보라 한다. 살찐 개구리가 낮게 그르렁거리는 것 같은 소리에 붙어 크게 울부짖는 괴성이 들린다. 그는 "수컷 바이슨들이 무리의 대장자리를 두고 싸우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바이슨이 공격성을 띨 때는 앞발을 구르거나, 고개를 끄떡거리거나, 꼬리를 세운다고 한다.
단순 관광객은 국립공원 한가운데에 난 도로를 편도로 지나며 길가의 바이슨을 구경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바이슨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꽤 어렵다. 가이드 리즈씨는 "이곳을 25번 왔는데 딱 2번밖에 못 봤다"고 했고, 트리스틴씨도 마지막으로 본 것이 6일 전이라고 했다.
바이슨을 보려면 이른 아침이나 저녁을 노리는 것이 최적. 하지만 방문했을 때는 해가 중천이었다.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큰 기대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바이슨을 연달아 두 마리나 볼 수 있었다. 창문만 살짝 열고 카메라에 바이슨을 담았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녀석은 태연했고, 무신경했다. 가이드는 "바이슨 옆을 지날 땐 서행해야 하고, 먹이를 주거나 자극하면 안 된다"고 했다. 충분히 포토타임을 제공하고 나면 바이슨은 알아서 아스펜 나무 사이로 갈 길을 잇는다.
가볼 만한 곳
올드 스트라스코나
에드먼턴의 대표 관광지는 웨스트 에드먼턴 몰이다. 북미 최대 크기의 쇼핑몰로 시설 안에 워터파크, 놀이동산, 스케이트장이 다 있다.
조금 더 조용하고 로컬들이 가는 상업 중심지는 따로 있다. 1870년대 조성된 마을 올드 스트라스코나다. 인근 앨버타 대학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작고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운집해 있고,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발달하고 있다. 여성복을 파는 밤부 볼룸Bamboo Ballroom, 마스코트 고양이 플레르가 상주하며 에드먼턴 주민들이 겨우내 읽은 책을 나누는 중고서점 위 북Wee Book Inn 등이 있다.
네온사인박물관
백년 묵은 네온사인을 볼 수 있는 길거리 박물관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에드먼턴에서는 네온사인이 크게 유행해 모든 가게 들이 앞 다퉈 달았다고 한다. 적어도 2,000개 이상의 네온사인이 있었다고 하니 말 그대로 불야성이었을 터다.
시간이 흐르면서 네온사인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생겼고, 1970년대를 지나며 서서히 네온사인들이 철거되기 시작했고, 곧 대부분의 네온사인들이 사라졌다. 그렇게 유서 깊은 네온사인들은 각 회사의 창고로 들어갔다. 하지만 최근 이 네온사인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의견이 대두됐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104번가 외벽으로 다시 돌아왔다.
먹을 만한 곳
전기자전거E-bike 푸드 투어
에드먼턴, 아니 캐나다의 운전 문화는 자전거에게 매우 친절하다. 무조건 양보해 주고 배려해 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전거 도로도 차도만큼 크고 넓다.
그래서 전기자전거를 타고 도시 맛집을 찾아다니는 푸드 투어가 유명하다. 이번엔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초코런트Chocorrant와 사보어Sabor 두 곳밖에 가지 못했다. 사보어는 에드먼턴 주민들이 생일이나 졸업 등 기념식이 있을 때 가는 해산물 요리 전문점이며, 초코런트는 엄청나게 맛있는 크루아상을 먹을 수 있는 제과점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데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버터크림이 쏟아진다.
Old Red Barn
더럽고 칙칙한 공간인 헛간을 포근하고 서정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콘셉트를 살려 아예 대가족이 식사하듯 기다란 테이블에 다 같이 앉아 먹는다.
메뉴는 한 가지. 이번에는 3층으로 만든 화덕에서 장작불로 당근, 감자 등 야채와 차돌양지를 함께 구워 내놓았다. 호박 수프와 동유럽식 만두 피에로기에 이은 스테이크까지 푸근한 맛을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
피로연 중심으로 영업하기에 일반적으로 목요일에만 문을 열며 예약 필수.
The MONOLITH
할아버지의 홈브루잉을 보며 자란 덕Doug씨가 99%의 전통 기법과 1%의 현대공학을 결합해 차린 양조장이다. 3층 건물 전체가 양조장인데 천장을 뚫어 원료가 1~3층을 오고가며 맥주가 만들어진다.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한 설계라고 한다.
두 개의 맥주를 시음했다. 먼저 Spontaneous Manifesto. 사과향이 톡 쏘면서 찌르고 들어온 뒤 끝 맛은 달콤하고 쌉싸름하게 감싸온다. 다른 하나는 Sojourn in Sicily인데 호두와 같은 곡물향이 한데 엉겨 붙어 시큼하게 덮쳐오고 이어 달콤한 레드베리가 이를 정리해 준다.
매우 독특한 경험이라 술을 좋아한다면 꼭 한 번 먹어볼 만하다.
RGE RD
바이슨 고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전문점. 가이드는 최고급 서부 캐나다 요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종업원이 와서 오늘 고기가 각각 어느 나라에서, 어느 부위 몇 온스를, 몇 달러에 사왔고 마블링 상태가 어떤지 다 얘기해 준다.
28일간 드라이에이징한 스테이크를 몇 개 시도해 봤는데 그중에서 바이슨 스테이크가 최고였다. 마치 캐나다 서부 대초원을 연상케 하는 맛이다. 처음엔 육향이 묵직하고 너무 질기지 않은 정도로 식감이 터프한데 마지막엔 살살 녹아내린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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