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Canada! 선주민 투어] 캐나다엔 두 개의 심장이 뛴다. 선주민과 개척자
'최근 캐나다에서 선주민 아동 유골 1,100구가 발견됐다. 19세기 캐나다 정부의 강제 동화 정책으로 세워진 선주민 대상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학대·학살의 근거로 추정된다.'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최소 15만 명의 선주민 아동들이 강제로 기숙학교에 배정돼 유럽 문화를 배웠다고 한다. 2년 전 우연히 읽은 이 뉴스는 마치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는 듯해 기억에 남았었다. 게다가 캐나다다. 평화롭고 차별 없으며 다양한 문화를 잘 존중해 '미국이 문화의 용광로(멜팅 팟)라면 캐나다는 모자이크'란 말이 있을 정도인 나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더 놀라웠다.
그래서 캐나다는 지금 선주민들에 대한 이해와 사과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더 나아가 선주민들의 삶과 문화를 캐나다 여행의 전면에 내세우려 한다. 선주민 투어Indigenous tour다.
알쓸'선'잡
"퍼스트네이션First Nation, 조약Treaty 6, 메티스metis…"
성공적인 선주민 투어를 위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으면 좋다. 먼저 인구학적 특성. 캐나다 인구 3,878만 명 중에서 180만 명이 선주민이다. 총 3개 집단으로 구성됐는데 퍼스트네이션(흔히 인디언이라 불리는 선주민들이다), 최북단에 거주하는 이누이트, 선주민과 유럽인의 혼혈인 메티스. 퍼스트네이션은 캐나다 정부가 설립되기 전에 원래 있던 국가란 뜻에 붙여진 이름이다. 인디언은 지극히 유럽 개척자들의 관점에서 붙인 이름이기에 거의 쓰이지 않고, 퍼스트네이션 내지는 정확한 부족명으로 호칭한다.
또한 선주민 문화를 알아 가다보면 숫자가 붙은 조약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는 캐나다 정부가 선주민들과 맺은 조약으로 여기에 서로에 대한 지원, 양보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정도만 알면 된다. 주의할 점도 있다. 선주민 문화를 단순히 뭉뚱그리면 안 된다는 점이다. 캐나다 내 선주민 집단은 총 634개가 파악되고 있고, 그들은 각각 고유의 개성과 역사, 지식을 갖고 있다. 즉 다 같은 문화가 아니다. 그래서 선주민을 대할 땐 '선주민이니 이럴 것이다'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드럼, 대지의 심장박동소리
현재 선주민들은 주로 캐나다 중서부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매니토바, 앨버타, 서스캐처원 등이다. 이번 여정에선 서스캐처원과 앨버타 에드먼턴, 재스퍼에서 각각 선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스캐처원에선 중심도시 사스카툰에서 가까운 와누스케이윈 역사공원Wanuskewin Heritage Park을 방문할 수 있었다. 와누스케이윈은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는 의미의 선주민어다. 6,400년의 역사가 있으며 북부 평원의 대여섯 개 부족들이 1870년대 보호 거주 구역으로 이주당하기 전까지 사냥을 하고 이따금 겨울을 나던 땅이었다고 한다.
탐방안내소 안에는 움막을 비롯해 선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건물 뒤편에 있는 '버펄로 점프'란 절벽. 옛 선주민들은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고 바이슨을 이곳으로 몰아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는 사냥법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선주민들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소가죽으로 만든 큰 드럼 하나를 여럿이 둘러싸고 스틱으로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풍습이 있다. 드럼은 약 120~150BPM으로 일정하게 치며 이것이 대지의 심장 박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전사의 노래', '환영의 노래' 등을 들을 수 있었는데 가사는 없고 높은 음의 일정한 곡조를 고함치듯 반복해서 내지르는 식이다.
머리엔 과학을, 가슴엔 존경을, 땅엔 역사를
앨버타 주도이자 산업 도시인 에드먼턴의 한가운데서도 선주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토킹 락 투어'다. 사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땐 에드먼턴 도시에 대한 지질학 수업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그건 아주 일부였다. 메티스 가이드 키스Keith씨는 먼저 "에드먼턴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는 북 서스캐처원강 수변공원은 빙하 침식으로 형성됐다"며 "센트럴파크보다 20배 넓고 북미에서 가장 큰 도시공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더 주력해서 조명한 것은 에드먼턴에 먼저 살았던 선주민들과 그들과 접촉하며 도시를 일군 개척자들이었다. 그래서 먼저 간 곳은 강 북쪽에 조성된 로스데일 선주민 묘지Rossdale Indigenous Cemetery다. 19세기 이전 선주민들과 개척자들이 묻힌 공동묘지다.
이곳은 로스데일 폐발전소 바로 옆에 있다. 오랜 기간 묘지의 존재는 모두 알았지만 별다른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돼 있었다가 2006년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선주민들을 기념하는 창 형태의 조형물이 있는데 이는 선주민인 블랙풋이 영토를 표시할 때 사용했던 걸 따왔다고 한다.
묘지 한편에 박혀 있는 돌 위에서 선주민들을 향해 제를 올렸다. 존경을 표하기 위해 안경과 모자도 모두 벗어야 했다. 그는 "머리엔 과학을, 가슴엔 존경을, 땅엔 역사를"이라고 중얼거리며 물을 상징하는 조개 위에 선주민들이 신성한 약초라고 생각했던 세이지를 태운 후 그 향을 손으로 한 움큼씩 떠서 머리, 귀, 입, 눈, 심장, 전신 순으로 씻었다. 각각 지혜롭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듣고, 말하고, 보며 살아가란 뜻이다.
묘지에서 바로 이어지는 월터데일Walterdale 다리 위에서도 비슷한 의식을 치렀는데 이번엔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말린 담배 잎을 날리며 선주민들의 언어로 감사를 표했다.
워리어 우먼의 위로
재스퍼국립공원에서는 '워리어 우먼Warrior women' 마트리샤 바우어Matricia Bauer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선주민어 이름은 이스코와 치타 와치. 워리어(전사)지만 실제로 전투를 한 적은 없고, 드러머다.
그는 선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약초 4가지를 가져와 그 유래를 직접 알려 주며 향도 맡게 해줬다. 각각 스윗그래스, 세이지, 삼나무, 담배다. 독특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스윗그래스는 태우면 좋은 에너지가 난다고 믿어 불을 붙여 그 향을 몸에 묻힌다. 세이지도 비슷한데 반대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 특히 여자에게 특효라고 한다.
삼나무는 신성한 나무며 치료의 힘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담배는 태웠을 때 영혼의 세계로 연결된다고 믿어 보통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 때 그 염원을 담아 불을 붙인다고 한다.
그리고 나선 대담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각각 가족이나 인간관계로 인한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고 선주민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런 상황을 이겨내는지 자문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정확하게는 자문보다 위로에 가까웠다. 어떻게 행동하라고 조언하기보다는 '영적인 존재들이 모두 순리대로 풀리도록 도와줄 것이며, 당신의 곤혹스러움을 이미 알고 있기에 차분히 진심을 다하면 언젠간 모두 해결될 것'이란 식이다.
박제되지 않은 전통
현대적 감각으로는 다소 긴가민가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그것이 유효하고, 합리적인지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옛 선주민들의 지혜이자 삶이었다는 걸 헤아려야 한다. 또 더 눈여겨봐야 할 건 조상들의 문화를 계속 '살아 있게' 만들려는 현 선주민들의 노력이다. 가령 이번 여행에선 손님이 왔다고 하니 일하다가 잠시 나온 듯 청바지에 작업복을 입고 나와 드럼을 치는 선주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상의 문화를 시대적 소임을 다해 죽어 박제된 것으로 놔두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 직접 참여, 관여하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꼭 전문성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더 흥미로운 건 선주민들이 갖고 있는 '캐나다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여행 중 만난 선주민 케빈 시스쿼시스kevin seesequasis는 "당신들이 선주민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편견"이라고 했다. 즉 선주민들은 특정한 헤어스타일이나 생김새를 갖고 있고, 입맛도 다를 거란 생각 모두 고정관념이 만들어 낸 허상이란 말이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캐나다란 커뮤니티의 일원이며, 맛있다고 생각하는 기준도 똑같고, 또 선주민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 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적확히 옮기고자 여기선 원주민이 아니라 선주민이라고 했다. 유럽 개척자 입장에서 원주민은 자신들이 개척해야 할 땅에 원래 살던 이들로서 정체성이 엄격히 구분되는 존재다. 하지만 선주민은 그저 모든 것을 포용할 뿐인 대자연에 먼저先 살고 있었고, 지금은 후後주민들인 자신들과 함께 사는 존재다. 공존과 포용, 전통의 계승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또 이를 관광이라는 세련된 형태로 풀어내는 이들의 모습이 큰 울림을 준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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