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살아남은 옛 집이 ‘집의 미래’다”

임지영 기자 2023. 11. 17.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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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남·노은주 소장은 부부 건축가다. 25년 가까이 가온건축을 꾸려가며 꾸준히 집을 짓고 강연을 하고 방송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열여덟 번째 책 〈집의 미래〉를 출간했다.
노은주(왼쪽)·임형남 가온건축 소장이 최근 열여덟 번째 책 〈집의 미래〉를 출간했다.

임형남 소장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풍성한 회색 곱슬머리와 하얀색 뿔테,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까지. 요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길을 지나다가도 버스 안의 승객이 창문을 열어 알은체를 할 정도다. 그의 옆에는 항상 노은주 소장이 있다. 임 소장과 달리 단정한 머리지만 주황색 뿔테 안경이 묘하게 두 사람의 분위기를 연결한다. 건축가 부부인 두 사람은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가온건축을 함께 이끌고 있다.

가온은 순우리말로 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두 사람은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라고 여기며 가온건축만의 특색을 담은 집을 지어왔다. 금산주택, 루치아의 뜰, 제따와나 선원으로 각종 건축상을 받았고 최근에는 미국의 디지털 건축 미디어 플랫폼 ‘아키타이저’가 한국 최고의 건축사사무소 1위로 가온건축을 꼽았다. 꾸준히 집을 짓고 강연을 하고 조언을 해왔지만 대중에 얼굴이 각인된 건 EBS 다큐멘터리 〈건축탐구 집〉을 통해서다. 2019년부터 3년 넘게 프로그램의 메인 ‘프리젠터’를 맡아 전국의 다양한 집을 찾았다. 건축가의 눈으로 본 집은 또 달랐다. 집의 모양도 크기도, 집 짓는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방송에서 두 사람은 특히 잘 들어주는 건축가였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 생각하고 출연했다가 3년6개월이 지났다. 일주일에 이틀은 방송 녹화에 시간을 쏟았다. 힘에 부쳐 후배에게 넘기고 ‘탈출’했다. ‘남의 집’을 그리지만 두 사람은 아파트에 산다는 게 반전이다. 3년 전 집을 지으려고 사둔 땅에는 잡초가 자라나고 있다. 꾸준히 집을 짓는 한편, 계속해서 책을 썼다. 2002년 〈나무처럼 자라는 집〉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열여덟 번째 책 〈집의 미래〉를 출간했다. 한국의 오래된 집을 순례한 기록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입구에 두 사람을 꼭 닮은 피규어가 방문객을 맞았다. 아담한 공간이지만 여닫이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새로운 공간이 나왔다.

사무실 구조가 재미있다. 인원은 얼마나 되나.

임형남(임):우리 둘 외에 직원이 4~5명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잘 안 늘린다. 너무 늘리면 회사를 키워야 하고 그러면 일이 또 재미없어진다. 적정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공공 프로젝트 같은 건 규모는 큰데 재미가 없어서 잘 안 한다.

공공 건축은 왜 재미가 없을까.

노은주(노):정해진 규칙을 못 바꾼다. 관과 하는 작업이라 절차가 있고 그걸 잘 지켜야 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몇 년 전 물가로 계산해야 하고 서류가 하나만 빠져도 안 된다.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고 그런 걸 잘하시는 분들이 되게 존경스럽다.

고택과 사원, 사찰 등 오래된 집을 순례해 책으로 냈는데 제목이 〈집의 미래〉다.

:여기 나오는 집들은 고전이다. 고전에는 영원성이 있다. 과거이기도, 미래이기도 한 거다. 500~600년 지나도 살아 있는 집들은 앞으로도 살아남을 테고 영원성이 있는 집이라 집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편집자가 원고를 꼼꼼히 읽고 제목으로 추천했는데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더라. 과거의 교훈을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집의 미래다. 다녀본 곳 중 정말 좋았던 곳들 위주로 담았다.

한국 사회에 전통 건축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 식민지 사관으로 공부를 했다. 말하자면 손에 자가 들린 셈이다. 그 자로는 우리 전통이 읽히지가 않는다. 미터법으로 옛것을 재면 이상한 숫자가 나온다. 잘못된 자로 재면서 폄하된 사례가 많다. 사실 우리 문화는 되게 독특하다. 철학자들이 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전무후무한 국가였고 독특함이 있는데, 빠른 시간 그 문화가 사라졌다.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전통 건축에 대해 얘기하면 촌스럽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것도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많다. 대표적으로 온돌 문화라 우리나라에는 고층이 없다고 하는데 온돌이 보편화된 건 200년밖에 안 되었다. 한옥도 시대마다 다 다른데 그걸 현대화하는 데 게을리한 면이 있다. 한옥이 카페로 쓰인다. 서양 사람들이 이국적 취미로 접근하듯이 즐기는 것이다. 자를 바꾸고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쓰지는 못했다(웃음).

:한옥에 대한 생각이나 한국 문화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아주 일반적이지는 않다. 다만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었으면 했다.

산천재는 조선시대 학자 남명 조식이 지은 집이다. ⓒ인물과사상사

‘높이 세우지 않으면서 주변을 압도하는 수평적 랜드마크’를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이라고 했다.

:실제로 해외 건축가가 와서 보고 놀란다. 중국·한국·일본 세 나라 건축물을 많이 비교해보았다. 우리만 갖고 있는 독특한 미학과 사고, 시각이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조선의 미와 공예〉라는 얇은 책이 있는데 그런 구절이 있다. 컵받침을 나무로 만든다고 치면 일본의 장인은 좋은 나무를 고른 다음 좋은 연장으로 정성 들여 만들어 모셔놓는다고. 한국 장인은 일단 손에 잡히는 나무 하나를 잡아서 뭐든 잡히는 연장으로 두드린 뒤 던져놓는다. 무슨 얘기냐면 일본 공예의 특징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한국은 ‘생겨나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게 핵심인 것 같고 한옥을 볼 때 감탄하는 지점도 그런 면이다.

옛집과 사찰 30여 곳을 책에서 다뤘는데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자면?

:산천재다. 예전에 (설계 사무실을 내고 처음 받은 일을 할 때) 현장이 근처에 있어서 어느 밤, 늦은 가을날 갔는데 건물이 좋다기보다 (주인이던 조선시대 학자) 남명 조식이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바둑에서 한 점 놓으면 딱 끝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노 소장이 '산천재에 다녀온 사람들이 대부분 실망했다'고 하자) 평양냉면 같은 느낌이다. 이걸 ‘1만6000원이나 주고 먹나, 맹물 같은데’ 싶지만 시간이 지나 그 맛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수서원이 참 좋았다. 서원 중 최초의 서원이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원이 많이 생기고 교육기관으로 틀이 잡히면서 규범과 예를 따지는 공간이 되었고 그것이 건축에도 반영이 된다. 병산서원이 대표적이다. 구조상 위계가 대단하다. 소수서원은 그렇게 되기 전이라 좀 다르다. 보통 동재와 서재(학생들의 숙소 또는 학습장소)가 마주보는데 여기는 기역자로 꺾여서 두 개가 연결되어 있다. 학생이 많지 않았던 것 같고 동네 한복판이니까 거리낌 없이 학문을 했다는 느낌이 든다. 현대 교육 공간이 이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최초의 서원으로 알려져 있다. ⓒ인물과사상사

도산서원 편에서 검소하고 경건한 건축의 가치를 언급하며 ‘모델하우스’ 역할을 해준다고 했다.

:금산주택이 (도산서원의) 도산서당을 본뜬 것이다(가온건축은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다). 이황이 57세 되던 해 짓기 시작한 집이다. 1501년생이니까 저작권이 소멸됐다(웃음). 금산주택을 지을 당시 건축주의 나이도 57세였다. 예전 10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도산서원을 보여주면서 꼬셨다. 퇴계 이황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좋은 집이다. 보통은 큰 집이 대표작이 되는데 조그마한(20평 내외의) 금산주택이 대표작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꾸준히 작은 집의 가치에 대해 강조해온 것 같다.

:건축주와 얘기하다가 ‘이거 필요 없는데 왜 넣으세요’ 이런 식으로 제안하다 보니 면적이 점점 줄어든다. 자꾸 그래서 문제이기도 한데 적절한 크기에 대해 고민을 한다. 너무 거품이 많은 삶을 사는 게 사실이니까. 그에 대해 자각을 하고 얘기하다 보니 자꾸 줄어든다.

:작은 집이라기보다 적정한 집에 대해 생각한다. 20대에 원룸에서 시작해도 30대에는 30평대, 40대에는 40평대에 살아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있다. 나이가 있는데 작은 집에 살면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보다는 내 생활과 그 면적이 맞는지가 먼저다. 혼자 살더라도 적당하다고 생각하면 큰 집에 살 수 있다. 연세가 있는 지인이 있는데 30~40평대 주공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 60평대 주상복합이 되었다. 관리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어떤 기준에서 보면 성공한 삶을 사신 거지만 이분의 삶에서 적정한 규모인가 그런 의문이 들더라. 우리가 경제적 상황에 너무 집중하느라 삶의 본질적인 면,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 좀 소홀한 게 아닌가 싶다.

건축만큼이나 글을 계속 써왔다. 두 사람이 같이 쓰는데 그 방식이 궁금하다.

:나는 우뇌(가 발달했)고, 노 소장은 좌뇌다. 분담이 좀 되어 있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시작은 내가 한다. 쓸데없는 소리를 막 써서 메일을 보내면 노 소장이 토를 달고 걸러내서 다시 보내준다. 그럼 또 거기다가 쓸데없는 소리를 쓰고 그걸 한 번 더 걸러서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생산성이 오히려 높다.

:처음에는 고칠 부분을 일일이 표시해서 고쳐도 되느냐고 물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서 그냥 고친다(웃음). 다시 보내면 본인이 좋아하는 내용이나 표현은 귀신같이 다시 넣어서 돌아온다. 그렇게 오는 건 살린다. 요즘은 누가 쓴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설계도 그렇게 한다고?

:임 소장이 스케치를 먼저 시작해 설계하면 내가 토를 단다. 이건 너무 나갔다거나, 이 부분은 이게 어떻겠냐는 식으로. 부부 건축가들이 그렇게 하다 싸우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임 소장은 뒤로 갈수록 약간 힘이 빠지는 스타일이고 나는 초반에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아 결정을 잘 못 내리는 편이다. 임 소장이 방향을 정해주면 나중에 힘이 빠질 때쯤 내가 들어가 바꿔놓는다. 손으로 그리는 시절이라면 그렇게 못할 텐데 사무실을 낸 게 1990년대 말, 2000년대 직전이라 캐드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보편화되기 시작할 때였다. 적응을 잘한 편이었고 지웠다 붙였다 주고받으며 작업을 했다.

금산주택은 도산서당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 ⓒ박영채

건축 설계의 가장 큰 매력으로 많은 땅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땅을 하나의 생명체, 유기체로 봤다. 땅에도 에고(ego)가 있다. 바로 느껴질 때도 있고, 몇 번 가봐야 느껴질 때도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땅의 속성이 있다. 나무를 만질 때 역방향으로 만지면 가시가 박히는데 순방향으로 만지면 부드럽잖나. 땅도 그 결이 있어서 그걸 빨리 읽어내 그에 맞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 그게 인문지리학이고 풍수다. 풍수를 미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땅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사람도 성격이 다 다른 것처럼 땅의 성격도 저마다 다르고 그게 너무 재미있다.

건축은 시간이 완성시킨다고도 했는데 오래된 건물은 부수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나.

:한옥 같은 경우는 보통 한곳에서 오래 산다. 강릉의 선교장만 해도 (200년 넘는 시간 동안 지어졌기 때문에) 집도 가족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가족도 집을 통해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도시에서는 감가상각 때문에 집이 낡으면 집값이 떨어지지만 시간이 완성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는 얘길 하고 싶었다. 등촌주공아파트의 경우도 사람들이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며 지난 삶을 담으려고 애쓰더라. 결국 좋은 집, 좋은 건축은 시간과 잘 관계맺은 집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집은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우선이다. 인식이 좀 달라지지는 않았나.

:같이 가는 것 같다. 적게 투자해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 있고 건축의 가치를 좀 더 생각하고 딴 데서 갖지 못한 공간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분들이 건축가를 찾아오신다. 단독주택을 빌딩이나 다세대주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도 남과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의뢰를 거절할 때도 있는지 궁금하다.

:1년 정도 쭉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성향이 안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은 고사한다. 사람이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안 맞는 경우가 있다.

:가령 식당에 가서 요리사한테 양념을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보통은 요리사에게 맡기고 먹는다. 그런데 건축은 본인의 관심이 크다 보니 내장재는 이렇게,서까래는 저걸로, 마감은 돌로 이렇게 디테일하게 다 머릿속에 가진 분들이 있다. 모든 게 다 그려져 있는 상태라면 그대로 해주는 사람을 찾아가면 될 것 같다고 한다. 전문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으면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다.

일하는 과정에서나 결과물에서나 마음에 드는 건축물이 있다면?

: 제따와나 선원. 결과물도 마음에 들지만 최고의 건축주를 만났다. 1년 설계하고 1년 동안 지었다. 나중에 추가로 또 공사를 했다. 보통 종교 건축은 (의견이 엇갈려) 10년이 걸린다는데 빠르게 마쳤다. 건축주가 스님이었는데 보통 도면을 보여주면 이런저런 의견을 개진하는데 이분은 ‘좋습니다’라고 한마디 했다. 그렇다고 그냥 끝내는 경우가 별로 없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스스로 검열해서 고치고, 또 그려가면 ‘이거 좋습니다’ 계속 그러는 거다. 사람을 다룰 줄 알았다. 성취의 동기를 부여해 우리도 열심히 하고 기분이 좋았다. 설계 협의 과정에서 스님이 ‘중도’에 대해 말했다. 처음도 좋고 과정도 좋고 결과도 좋은 게 중도라고 설명했다. 그런 면들이 좀 신선했다.

:건축주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면 좋다. 디테일하게 다 그려오는 것 말고, 본인이 본인을 잘 알고, 남의 얘기에 휘둘리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를 많이 하면 본인이 잘 깨닫지 못했던 어떤 부분을 우리가 캐치할 수 있다. 건축을 너무 공부하고 오실 필요는 없다.

가온건축은 2020년 제따와나 선원으로 아시아건축사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박영채

임 소장은 친구 권유로 건축학과에 들어가 건축을 모른 채로 졸업했다고 했는데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건축을 꿈꾸고 들어간 친구들은 중간에 포기하고 딴 걸 하더라. 건축에는 여러 속성이 있다. 공학적인 속성 등 다양한 속성 중에 사람을 만나는 부분도 있다. 건축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얘길 듣는 일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더라. 학교에서 선 긋기나 물리적인 부분을 배웠지만 건축의 정신은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고건축 답사를 하면서 건축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는데 아버님이 어느 날 여자가 건축을 하니 멋있다며 권유했다. 생각해보니 괜찮았고 학교생활도 즐거웠다. 건축은 낭만적인 부분도 있지만 법규를 조사하고 여러 사람과 관계하면서 요구사항을 파악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책을 쓰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건축물을 지어서 남기는 것도 중요한데 내가 이 건물을 짓기 위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이론을 정립했는지,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 게 진짜 의미가 있더라. 건물은 부서지거나 철거될 수 있지만 내가 그 건물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영원히 그 건축가의 것이 된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데에도 그런 의도가 있었다. 집을 처음 지을 때 1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주인이 있으니 우리는 자유롭게 갈 수 없었다. 당시 생각과 스케치를 모아 책을 썼고 그때 책 쓰는 재미를 알았다.

미국의 건축 미디어 플랫폼 '아키타이저'가 가온건축을 한국 최고의 건축사 사무소로 꼽았다.

:25년이 되었는데 왜 아직도 주택 건축을 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어느 순간 다들 공공주택으로 가고 대형 기획으로 가니까. 우리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오래 걸리고 재미가 없었다. ‘너무 재미만 추구했나. 부를 추구했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누군가 칭찬을 해준 거니까 기분이 좋았다.

가온건축이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건축은 땅과 사람이 같이 꾸는 꿈이라고 우린 늘 이야기한다. 너무 기본적인 건데 지켜지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꾸는 꿈이 더 많고 땅이 꾸는 꿈은 별로 없다.

:우리가 지은 건물을 보고 따뜻하다고들 한다. 현대 건축이 굉장히 차가워졌다. 나무나 돌에서 콘크리트, 유리, 철로 오면서 재료가 차가워진 면도 있다. 하지만 따뜻함이 사라지는 이유를 더 생각해보면 집은 생각과 시간으로 짓는데 지금의 집은 법규와 돈이 짓는 것 같다. 집이 그렇지 않나. 하루 일과를 끝내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 온기를 느끼는 공간이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이 건축으로 구현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걸 따뜻하다고 해준다는 점에서 가온의 건축은 ‘온기가 있는 건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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