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무엇도 바라지 않았던 이 시대 마지막 의병 33인…'독도의용수비대'의 그날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독도는 우리 땅.
16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최후의 의병 - 1954 독도 대첩'이라는 부제로 독도의용수비대의 그날을 조명했다.
대구에 사는 박영희 씨는 지인의 소개로 홍순칠 씨를 만났다. 딱 한 번 만난 사이였던 두 사람. 그런데 순칠 씨는 그날 이후 매일같이 영희 씨와 결혼을 하겠다고 그의 집을 찾았다.
목발을 짚고 화상 자국까지 있던 순칠 씨. 부모님들은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양주까지 사들고 방문해 영희 씨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이에 마음이 움직인 영희 씨의 아버지는 영희 씨의 마음에 따르겠다고 했고, 이후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영희 씨는 순칠 씨가 "장미꽃이 활짝 핀 정원에서 책만 읽게 해 주겠다"라는 말 한마디에 홀딱 반했던 것.
결혼식 다음 날 순칠 씨는 갑자기 영희 씨에게 당장 떠나야 한다며 그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울릉도였다.
바다를 생전 처음 본 새색시 영희 씨. 이들을 반긴 것은 커다란 이 층집 한 채였다. 그런데 이들의 신혼집은 어딘가 이상했다. 1층에만 방이 8개에 2층은 전체가 한 칸으로 되어 있던 것.
특히 이들의 신혼집에는 웬 남자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순칠 씨를 향해 경례까지 했다. 그리고 2층에 모여 매일같이 회의를 하는 남자들. 이에 영희 씨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물었다. 하지만 순칠 씨는 말을 아꼈고 이듬해가 되어서야 진실을 말했다.
순칠 씨는 상이군인 출신의 독도의용수비대였던 것. 그리고 함께 기거하는 이들은 그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이었다.
이에 순칠 씨는 영희 씨에게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길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영희 씨는 남편의 말을 따르기로 했고 그를 내조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때, 한반도에는 평화선이 선포되었다. 그런데 평화선 선포 이후 이상한 일들이 생겼다. 일본인들은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며 팻말을 심어놓고, 독도 인근의 우리 어민들을 위협해 쫓아내기까지 한 것.
1947년 조선 산악회가 세워둔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알리는 첫 시설물이었던 팻말을 뽑아버리고 다케시마라는 이름의 팻말을 꽂은 일본인들. 그 후 독도에서 일본과의 팻말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울릉도에서 나고 자라, 할아버지에게 늘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던 순칠 씨. 그의 독도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이에 순칠 씨는 스스로 독도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자신과 같은 상이군인 출신의 청년들과 함께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했다.
그는 "독도는 우리의 영토 이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민토, 화적 같은 일본인이 독도를 침범하는 것을 어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만 있어야 되겠냐. 우리 밭을 우리가 지키는데 백의종군하는 의병으로 동참하자. 동지들 독도로 가지 않으시겠냐"라며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모았고 그렇게 1953년 홍순칠 대장을 필두로 독도의용수비대가 결성됐다. 이는 아무런 보수도 없고 대가도 바라지 않는 이 시대 마지막 의병이었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받은 300만 원의 자금으로 오징어를 사고 그 오징어를 팔아 500만 원의 군자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경찰에 무기 지원을 받고, 그것으로는 모자라서 군자금으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무기도 구매했다.
그리고 목선인 삼사호를 타고 독도로 들어갔다. 첫날 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에 태극기를 올리고 애국가도 불렀다.
그 후 이들은 낮밤으로 경계 근무를 섰고, 조업하는 어민도 지키고 틈이 나면 미역 채취를 해서 운영자금에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망치와 정으로 바위를 쪼아가며 독도 개척도 했다. 또한 독도의용수비대는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일본의 침입을 이겨냈다.
그러던 어느 날 독도의용수비대를 위문하러 위문단이 도착했다. 어마어마한 위문단의 규모. 위문단은 수비대에게 필요한 포탄까지 선물했다. 그리고 곧 위문 행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세찬 바람으로 찢어질 듯 태극기가 펄럭였고, 이에 홍 대장은 심상찮음을 느꼈다. 급히 그는 위문 행사를 중단시키고 급히 사람들을 선착장의 배에 태우려던 그때 비명이 들려왔다.
홍대장이 죽을 때까지 못 잊는다는 비명 소리. 서둘러 절벽을 내려오다가 실족사를 한 사람이 나온 것. 독도에 온 후 첫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였다. 당시 희생된 이는 스무 살의 허학도 통신사. 함께했던 어린 동료의 죽음에 수비대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이를 듣던 지상렬은 "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시다. 1952년에 화랑무공훈장도 받으셨다.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 계속 인민군에 맞서 싸우셨는데 홍 대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남 일 같지 않다"라며 "처음 하는 이야기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일본의 무장 순시선이 독도를 포위했다. 이에 무기를 손에 들고 홍순칠 대장의 사격 개시 신호만을 기다렸다.
홍대장이 방아쇠를 당긴 그때 독도가 떠나갈 듯 총성이 울렸다. 그 남자가 없는 박격포의 포탄은 네 발 모두 빗나갔다. 이에 신중하게 다섯 번째 포탄을 준비했고 이는 일본의 순시선을 명중시켰다.
일본 순시선들은 서둘러 동쪽 바다로 물러나고 그렇게 또 한 번 일본의 상륙 시도를 막아냈다. 그날 이후 일본은 더 이상 독도에 영표 표식을 세우지 못했다.
함포로 무장한 450톤급 순시선 두 척에 소총과 박격포로 맞선 이 전투는 훗날 독도대첩으로 불리었다. 이후 홍대장은 독도 경계임무를 울릉경찰에 물려주고 울릉도로 돌아갔다.
그는 유산으로 받은 집, 밭, 땅 등 전재산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렸고 독도를 지켰다. 울릉도로 돌아가니 빚이 태산이며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참아냈는데 사람들은 그의 노력을 비웃었던 것.
그때 이들이 독도를 지키지 않았다면 독도는 빼앗겼을 것이다. 국제법상 어느 국가에 속해 있는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은 누가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가이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도 현재도 우리나라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우리의 영토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교과서를 통해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임에도 우리가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고 자신들은 항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일본이 원하는 것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것, 그들은 독도 문제를 국제 사법 재판로소 끌고 가려고 하고 있다.
1986년 5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 홍 대장. 그리고 그가 사망한 지 10년 후 그가 남긴 기록이 세상에 공개됐다. 그는 "언젠가 일본이 독도를 또다시 넘본다면 반드시 공개해 달라"는 유언과 함께 기록을 남겼다.
그의 기록이 공개되고 한 달 후 우리 정보는 독도의용수비대에게 공로 훈장, 보국 훈장을 수여했다. 홍순칠 대장을 포함한 총 33인 독도의용수비대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 중에는 보급을 맡았던 선원들과 후방에서 지원했던 영희 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40년이 흐르고 나서야 이들의 공이 인정된 것이다.
독도의용수비대가 활동한 지도 70년의 세월이 흘러 현재 대원들은 대부분 고령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자료를 통해 생전 그들의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자신들이 했던 일에 대해 "후회 없다. 다시 또 그런 일이 있다면 그때처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여전히 독도를 노리는 일본이 다시 독도를 넘보는 일이 없도록 하고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그들이 아니었다면 독도는 지금의 이름과 달랐을 수도 있는 상황.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일본에서 다시는 독도를 넘보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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