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갈퀴로 긁어 모으던 ‘K-반도체 스타트업’에 서리 내렸다... 파두 때문에

배동주 기자 2023. 11.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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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 2분기 실적 5900만원... 무너진 반도체주 신뢰, 장외시장에도 영향
매출 없어도 기술개발 단계 따라 기업가치 상향 조정 관행 바뀔 듯

혹한기임에도 벤처투자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유치해 왔던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 업계가 얼어붙을 조짐이다. 조(兆) 단위 시가총액으로 상장한 반도체 업체 파두가, 지난 6개월(4~9월)간 4억원도 안 되는 매출을 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주가 폭락은 물론 반도체주 상장 신뢰마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관련 스타트업 투자를 예정했던 벤처캐피털(VC)들은 자금 회수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졌다고 판단하고 대거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파두 쇼크로 인해 기술특례 상장의 문턱이 높아지면, 대부분 적자인 시스템 반도체 상장 준비기업들의 상장이 차질을 빚을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들의 투자유치 지연은 물론 투자 금액에 비례해 책정했던 기업가치 산정 방식마저 대거 조정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에 반도체 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뉴스1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팹리스) 스타트업 리벨리온에 투자를 예정했던 VC들이 대거 투자 집행을 유보했다. 투자집행 타당성을 검증하는 VC 내부 투자심의위원회의 심의가 파두 사태 이후 까다로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AI 반도체 칩 설계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의 투자유치 마무리도 늦어지고 있다. 1600억원 규모로 추진하는 시리즈C 투자유치 1차 마감을 지난 7월 진행했고, 후속 투자를 유치해 연내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최근 투자 확정 절차 과정에서 지연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체 파두의 추락이 VC들의 투자 집행 지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2015년 창업한 파두는 데이터센터 전용 ‘SSD(Solid State Drive·데이터 저장장치) 컨트롤러’를 주력으로 개발하는 회사로, 조 단위 시가총액으로 상장하는 등 국내 투자업계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6개월(4~9월)간 4억원도 안 되는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 2분기는 매출은 5900만원이었다. 지난 8월 상장 당시 ‘올해 매출 1200억원’을 자신했던 것과 대조된다. 주가는 급락했고, 금융 당국은 이와 관련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국내 한 VC 중역 심사역은 “반도체 등 딥테크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파두는 최근 VC들이 투자심의위원회에서 피어그룹에 올리는 대표 기업이었다”라면서 “반도체 스타트업에 대한 신뢰 상실은 물론, 상장 후 회수 전략 자체를 다시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투자 혹한기에도 반도체 등 딥테크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는 꾸준히 자금이 몰렸고, 특히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들은 매 투자 유치 때마다 기업가치가 크게 뛰어올랐다.

최근 시리즈B 투자유치 라운드를 진행 중인 리벨리온만 해도 지난해 시리즈A에서 약 3900억원 기업가치를 평가받았지만, 이번 투자유치에선 7000억~8000억원 기업가치 평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가정에 기반해 책정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파두 본사 모습. /뉴스1

시스템 반도체 기업가치는 투자유치 금액을 토대로 5~6배 수준에서 책정된다. 대규모 수주 등으로 시장에서 성과를 입증하기 전까지 매출을 낼 수가 없고, 생산 설비가 없는 팹리스라는 특성으로 인해 투자유치 금액에 기반에 기업가치를 책정하는 구조인 탓이다.

예컨대 반도체 초기 개발을 위해 100억원 투자를 유치한다고 하면 기업가치는 투자 유치액을 전체 기업가치의 20%로 가정해 500억원 정도로 잡는다. 이후 시제품 생산에 나설 시기가 되면 약 500억원 투자를 받고, 기업가치를 2500억원으로 잡는 식이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팹리스는 기술 개발 후 시제품 생산을 삼성전자나 대만 TSMC 등 파운드리에 맡기는데 기술개발 마지막 단계에선 시제품 생산에만 300억~400억원의 비용이 든다”면서 “기업가치를 낮추면 투자자가 대주주가 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파두는 VC업계나 증권업계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갖췄을 것으로 인정받았지만, 실적만 보면 최소한 2023년은 고객사들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했다. 한때 2조원을 넘어섰던 파두 시가총액이 현재는 9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술 개발 단계를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했던 VC업계가 보수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특히 기업가치가 1조원 안팎까지 늘어난 기업은 회수가 가능할지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이미 매출 500억원을 올렸고, 올해 1200억원 매출을 자신했던 파두마저도 실적이 꺾이고 주가가 급락했다”면서 “이제 새로 상장하는 곳은 파두를 피어그룹에 넣을 수 없고, 당분간은 상장 자체가 가능할지도 의문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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