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나는 의심하겠어요, 엄마의 진심도
“흔한 주제?…위급함 그대로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
밤은 내가 가질게
안보윤 지음 l 문학동네 l 1만6000원
소설가 안보윤(42)의 새 단편집 ‘밤은 내가 가질게’엔 2020~23년 발표한 7편이 수록됐다. 연작이 아니지만 인물과 사건이 서로 중첩되며 증폭된다. 한권으로 만나 8번째, 9번째 이야기를 더해내는 격이다. ‘진심’이란 것의 실체를 끊임없이 의심함으로, 어떤 진심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달까. ‘엄마의 진심’도 부단히 해체하려는 데서 안보윤의 진심에 대한 진심이 올돌해진다.
알 만한 일이다. 진심의 오염은 상대를 속일 때가 아니라 스스로를 속일 때의 지경이다. 단편 ‘어떤 진심’부터 보자. 위선과 무책임조차 진심의 표정을 갖다 짓는다. “누구에게나 친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란은 이서에게 공짜 과외를 제안한다. 과외비가 없는 재혼가정의 아이다. 유란은 “내가 없으면 이서는 다시 혼자가 되는 거”라 생각한다. 외로움이라면 유란도 잘 안다. 교회에 엄마가 빠져 전 재산을 기부하고 교회 사모가 되자 유란도 교회 시설로 들어가 자랐다. 황 목사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에 진심이었으나, 공동체로 유입된 청년들이 혹독한 교회 노동, 헌금과 활동비로 착취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황 목사의 힘도 ‘진심’에 있었다. 가슴을 쳐대며 자신이 “미력한 존재”임을 신도들에게 사과하는, 다만 “사과받는 신도들이 진저리를 칠 때까지, 더이상 사과받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실행하고 말 때까지 집요하게 반복되는 사과”의 진심. 유란은 이윽고 이서를 공동체 시설로 유인한다.
이서는 구원될 것인가. 이 질문에 앞서 묻게 된다, 이서에겐 구원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구원은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자신을 “구원자”로 포장하는 이들이 감행하는 가스라이팅은 황 목사의 것처럼 집요하다. 제 가슴을 먼저 쥐어뜯는다. 더딘 딸을 모자란 딸로 내몬 미도의 엄마(‘미도’)가 그러하고, 딸을 죽음으로 내몰다 ‘딱 한번 실수 아니냐’ 사과로 마무리한 하진의 엄마(‘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도 마찬가지이며, 직접 학대 폭력을 일삼는 주승의 보호자(‘밤은 내가 가질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구원이 이처럼 흔하다면야…. 하지만 ‘구원’은커녕 아주 소소한 ‘구조’의 손길이, 안녕을 물어주는 아주 작은 기척이 절실할 때 그 흔한 진심들은 어디에 있는지 작가는 묻는다. 사회, 공동체는 물론이거니와 가족의 진심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가 소박했달 정도로, 작가는 ‘진심의 부재’ 상황을, 과연 현실적인가 할 만큼, 가혹하게 들춘다. 깊이 팬 내면의 상처, 즉 트라우마로의 인과이자 트라우마의 후과를 조명하는 방식이다.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은 살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다(‘바늘 끝에서…’). 하루살이처럼 살기를 바라고(‘밤은 내가 가질게’), 살기 위해 차라리 방치되고자 하고(‘애도의 방식’), 살기 위해 진심을 아낀다(‘완전한 사과’).
사과도 진심도 오염된 세태에서, ‘완전한 사과’와 ‘애도의 방식’이 남기는 여운은 길다.
‘나’는 초등생 동주의 하교 도우미다. 도우미가 있든 없든, 학교 파하고 나오는 길에서까지 동주는 승규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딱 한번 맞서려는 동주의 부탁을 받아 나는 “진심” 도와주려는데 동주 엄마는 생각이 다르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버티면 결국 다 지나가므로, “눈에 띄는 다른 아이라면 얼마든지 또 있을 테니까”, 다음 표적으로 옮겨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나는 하교 도우미에서 잘린다. 백수가 되어서도 동주의 하굣길에 서 있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또 괴롭힘 현장을 본다. -악귀 같은-가해자를 동주에게서 떼어내고, “내 허리께밖에 오지 않고 어쩌면 다섯번째 어금니는 아직 돋지도 않았을 그런” 어린 승규가 나동그라지고, 나는 절규하듯 묻는다, 사과할 거냐고, 애원한다, 제발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하라고.
승규의 ‘완전한 사과’는 가능했을까. 작다면 작은 이 사건의 미래가 ‘애도의 방식’이다. 중학생 승규가 상대에게 진심을 다해 주먹을 휘두르려다 우발적으로 추락사한 폐건물 현장에 함께 있던 아이의 이름은 동주. 동급생 동주에 대한 조롱과 멸시는 더 소란스러워져 있었고, 폭력은 더 무참해져 있었으며, 둘의 관계는 더 수직적이 되어 있다. 동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까지 그를 쫓아다니며 “진실을 말해달라”던 이는 승규의 엄마다. 동주는-악동에서 악마로 자란-승규의 그날에 대해 끝끝내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승규를 되레 죽였다는 오해와 소문으로 또 한번 짓밟힌 상태에서도 말이다.
이 두 단편이 추가해낸 맥락은, 승규의 처지에서 인과응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주에겐 결코 그렇지 않다. 오래전 엄마가 시킨 대로, 살기 위해 침묵할 뿐이다. 승규의 무책임한 불행으로, 더는 말할 수도 없다.
진심은 표명되지 않는다. 진심은 겨우 어리고 비친다. 누군가를 위해 잘 굽고 잘 튀긴 음식의 기색이 그러하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권하는 음식들을 안보윤이 무심한 듯 소설의 소품으로 차려내는 이유일 것이다. 그만큼의 개입, 그만큼의 진심이면 ‘되는’ 일이 충분히 많다. 구원은 ‘됐다’. 아주 작은 기척, 기별이면 ‘된다’.
2023년 현대문학상을 받은 ‘어떤 진심’, 이효석문학상(대상)의 ‘애도의 방식’, 2021년 김승옥문학상을 받은 ‘완전한 사과’ 등은 안보윤의 집요한 문학관이 노정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16일 한겨레에 “주제가 흔해 보인다는 말은 지겹다거나 해결되었다는 뜻이 될 수 없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중차대하다고 말하는 것들에 덮인 것일 뿐 교육, 가정이라는 근간이 흔들린다는 위급함엔 변함이 없고,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 정도는 문학이 담론화하고, 그게 리얼리즘 문학의 구실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학교폭력·가정폭력 주제는 이제 너무 흔치 않은가, 왜 천착하는가’라는 질문에, 오래전부터 팽팽히 당겨왔던 활시위를 놓은 듯 즉각 돌아온 답변이었다.
엄마라는 존재부터 사회 안전망까지의 크레바스를 포착하는 안보윤의 시선은 예민하기보다 완고하다. 눈매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의식과 의지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소설집 여러 단편에서 흔적만 겨우 남긴, 아이와 개 토리를 데리고 살다 혼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한 여성의 안부를 작품 하나로 또 듣게 될 것 같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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