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말들이 이어졌다

한겨레 2023. 11. 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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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말했다.

"공감해요. 한 문장도 읽기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찾아 읽은 책이 초단편 소설이었어요. 어쩌면 읽고 쓸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성과 소수자에게 이런 쓰기와 읽기가 더욱 필요한 건 아닐까요? 단상. 단편적인 생각을 기록하고, 읽어도 괜찮은 독서 문화. 여백이요." 한 사람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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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300개의 단상

세라 망구소 글, 서제인 옮김 l 필로우(2022)

한 사람이 말했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어떤 색깔과 감정이 떠오르나요? 저는 파란색이 떠올라요. 블루는 우울과 슬픔. 무언가를 계속 욕망한다는 건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인정하는 일 같았어요. 무엇이 제 욕망을 블루로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따져가는 작업이 저에겐 글을 쓰고, 욕망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원하는지 모르고 침범당했던 접촉과 혼자 화장실에서 확인했던 임신 테스트기도 떠올라요. 산부인과에서 사후 피임약을 타서 쓸쓸하게 돌아오던 길과 그날의 공기도 떠올라요. ‘욕망’이라는 단어가 부른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한 사람이 말했다. “욕망이 블루라는 말에 공감해요. 저는 파란색이 바탕인 ‘슈팅스타’가 떠올라요. 다양한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이요. 저에게 욕망은 아이스크림 같아요.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먹기 전에는 기대되고, 먹고 나면 사라지고, 때로는 녹아버리는. 맛있고 허무한. 욕망이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하면 자유로운 그대로 괜찮다고 느껴요.”

한 사람이 말했다. “저는 안개가 떠올라요. 흐릿한 무언가 같아요. 있는데 만져지지 않는 허기처럼 내내 곁에 있어요.”

한 사람이 말했다. “저는 욕망하면 통제가 떠오르고, 그래서 시계가 연상됐어요. 주어진 시간표대로 살려면 시계가 필수잖아요. 시간표에는 제 욕망이 끼어들 틈이 없죠.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처음 주어진 시간표 없는 1년을 지냈어요. 그때 방황했어요. 스스로 시간을 사는 하루가 낯설었어요. 하루하루가 엉망이었어요. 그런데 그 헤매는 시간 동안,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을 돌아볼 용기를 기른 것 같아요.”

한 사람이 말했다. “저에게 욕망은 나쁜 일 같아요. 계속 무언가를 욕망하면 안 된다고 배우잖아요. 그렇게 길들였으니, 제 안에 끓는 걸 몰라야 하는 거예요. 근데 사실 좋아하는 게 있거든요. 남몰래 간직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관계에서 저는 고상한 척해요. 제 안의 천박한 무언가를 꺼내기가 두려워요. 저에게 욕망은 연기일까요? 없는 척해야 하는, 있는 것.”

한 사람이 책을 펼치고 문장을 낭독한다. 둘러앉은 모두가 앞에 있는 얇은 책을 펼친다. “54페이지입니다. ‘가끔은 단 한 문장만으로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가끔은 책 한 권의 제목만으로도.’ 우리는 방금 욕망이라는 단어 하나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 사람이 말한다. “이제, 책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세라 망구소의 ‘300개의 단상’은 무척 짧은 문단으로 채워져 있죠. 이런 식의 글은 헤밍웨이 같은, 주로 남성 작가가 써온 방식이에요. 비남성, 여성 작가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무척 반가웠어요. 꾹 눌러 쓴 진심이 담긴 짧은 문장과 문단에서 힘이 느껴져요. 다양한 이야기를 불러내는 책이었어요.” 한 사람이 말한다. “공감해요. 한 문장도 읽기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찾아 읽은 책이 초단편 소설이었어요. 어쩌면 읽고 쓸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성과 소수자에게 이런 쓰기와 읽기가 더욱 필요한 건 아닐까요? 단상. 단편적인 생각을 기록하고, 읽어도 괜찮은 독서 문화. 여백이요.” 한 사람이 말했다. “정말요. 다른 분들은 책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물론, 정리되지 않은 단상을 꺼내도 괜찮습니다.”

홍승은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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