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의(醫)심전심] 실손보험 하나쯤/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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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실손보험이 의료 현장에 가져온 해악을 보며 나 한 명이라도 가입하지 말아야겠다고 오래전에 다짐했다.
실손보험은 면역증진주사, 고주파온열치료 등 비급여 보완대체요법을 필수치료처럼 포함시키는 요양병원 수익 모델의 토양이 됐다.
국민 대부분이 '실손보험 하나쯤'은 갖고 있어서 일어나는 거대한 '카르텔'의 침묵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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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질병과 사고를 대비한 필수품이라 ‘국민보험’이란 별명도 있다. 그러나 실손보험이 의료 현장에 가져온 해악을 보며 나 한 명이라도 가입하지 말아야겠다고 오래전에 다짐했다. ‘필수의료’ 측면에서 실손보험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실손보험은 비급여시장을 팽창시켰다. 개원가에서 활발히 시행되는 각종 영양주사, 도수치료 등은 근거 중심 의학에선 권하지 않는 보완대체요법이다. 필수의료라 보기 어렵고 건강보험에서 지원하지 않는다. 굳이 하려면 환자 본인 부담인데 실손보험은 그 문턱을 상당 부분 낮췄다. 가격이 내리니 수요는 늘고 의사들은 성장하는 시장으로 흡수됐다. 비급여치료 대상들은 ‘환자’라기보다 ‘고객’이다. 중증도가 높지 않고 지갑을 잘 여는 고객을 맞이하며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아픈 환자들을 상대하겠는가. 쉬운 길을 열어 놓고 어려운 길을 가지 않는다 타박하기엔 실손보험이 깔아 놓은 쉬운 길이 너무 넓다. 어려운 길을 가겠다 결심하고 수련을 받아도 극심한 노동 강도 속에 번아웃되면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필수의료 영역에서의 해악도 크다. 실손보험 환자들은 입원을 선호한다. 통원치료보다 보장 범위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비싼 비급여 약제를 쓰는 환자들은 입원을 고집한다. 의사들은 환자가 돈 걱정 없이 최선의 치료 받기를 원하고, 무엇보다 바쁜 진료실에서 그들과 실랑이하며 관계를 망치고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환자와 의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입원 수요와 병상이 늘어난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OECD에서 병상수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됐다. 입원은 통원보다 돈이 많이 든다. 실손보험 환자 입원에는 국민건강보험 돈도 들어간다. 우리나라 경상의료비는 지난 10년간 OECD 연평균 증가율(4.4%)의 거의 두 배인 8.0%씩 상승했다.
암요양병원의 번성도 실손보험 덕이다. 환자와 가족들은 치료 후 쇠약해진 몸으로 집에 있기가 걱정되는데 마땅히 도움받을 곳이 없다. 이런 돌봄수요의 대안이 암요양병원이다. 실손보험은 면역증진주사, 고주파온열치료 등 비급여 보완대체요법을 필수치료처럼 포함시키는 요양병원 수익 모델의 토양이 됐다. 실손보험 환자들의 요양병원 이용 횟수와 기간이 늘어나며 생기는 문제 중 하나는 감염 확산이다. 독감, 코로나는 물론 각종 항생제 내성 세균, 옴 등 기생충 전파 기회가 늘어난다. 집에서 지낼 수 있는데도 ‘삼시 세끼를 해결하느라’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는 환자를 만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의료제도 위기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많아졌다. 응급실 뺑뺑이, 필수의료 붕괴, 의료 취약지 증가 등이 연이어 보도된다. 그러나 실손보험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언론은 드물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만 관심이 있다. 의료 수요와 비용 증가, 도덕적 해이, 비급여 팽창 등의 해악이 의료제도 위기와 연관돼 있다는 인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 대부분이 ‘실손보험 하나쯤’은 갖고 있어서 일어나는 거대한 ‘카르텔’의 침묵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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