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면서 출퇴근 시간 자유롭게… 배우자 출산휴가 꼭 써야

최은경 기자 2023. 11. 17.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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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아이 낳게 하는 일터] 한화제약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한화제약 본사에서 직원들이 자녀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와 태블릿PC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웅규·김종열·지광식·황신원·김보라·곽은경씨. 출산을 앞둔 김보라씨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들고 있다. /김지호 기자

한화제약 회계팀 김보라(32)씨는 지난 4월 경력직으로 입사하기 직전 건강검진 과정에서 자신이 임신 8주 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쁨도 잠시, 김씨는 고민에 빠졌다. 갓 옮긴 회사에서 출산·육아 휴직 얘기를 꺼내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김씨는 회사에 “입사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회사 측 반응이 뜻밖이었다. 인사팀은 “임신 때문에 입사를 왜 포기하느냐”며 “정해진 날 출근하고 출산·육아 휴직도 눈치 보지 말고 써달라”고 했다. 이번 달 김씨는 출산 휴가(3개월)를 앞두고 있다. 6개월간 육아 휴직도 쓰기로 했다. 그는 “눈치를 주는 상사나 동료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마음 놓고 육아에 전념하고 내년 여름에 복직하려고 한다”고 했다.

한화제약은 1976년 ‘양지약품’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제약 회사다. 해외 제약사 제품의 라이선스 계약을 해 국내에서 생산·판매한다. 1982년 네덜란드 제약사 ‘오가논’과 합작하면서, ‘한국’과 ‘화란(和蘭·네덜란드의 한자어)’에서 한 글자씩 따 ‘한화제약’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화 그룹과는 관련 없는 회사다. 과거 한화제약이 수입한 제품 가운데 많이 알려진 브랜드는 피임약 ‘머시론’이었지만 이제 팔지 않는다. 시대가 바뀐 지금 이 회사의 핵심 제품은 조산(早産)을 막는 처방약 ‘유트로게스탄’이다. 유럽 회사와 합작해 탄생한 배경 덕에 한화제약은 보수적인 제약업계에서 ‘가족 친화적’ 기업으로 통한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처음으로 선정한 ‘가족 친화 최고 기업’ 12곳 가운데 이름을 올렸다.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한화제약 본사에서 만난 직원들이 ‘애 키우기 좋은 회사 환경’ 중에서 첫째로 꼽는 것은 2009년 도입한 ‘연말 장기 휴가 제도’다. 크리스마스 전 종무식을 하고 이듬해 1월 1일까지 전 사원이 열흘 가량 재충전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한화제약 계열사 네츄럴라이프 소속 황신원(37)씨는 “매년 연말이 되면 열흘 가량 쉴 수 있어 가족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미리 계획을 세운다”고 말했다.

자녀를 둔 사원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캠핑장 대여’ 제도다. 2015년 캠핑이 유행하기 시작하자 춘천 생산 공장 인근에 캠핑장 2곳을 조성해 사원들에게 개방했다. 부엌·샤워 시설을 갖춘 사택을 펜션처럼 활용할 수 있고, 텐트 등 캠핑용품 세트도 공짜로 빌려준다. 캠핑덱, 바비큐 시설, 산책로가 갖춰져 있고 인근엔 계곡도 있다. 초등학교 1·2학년 자녀를 둔 영업관리팀 곽은경(43)씨는 “아이 친구들 가족까지 여러 명 초대해 캠핑장에서 다 같이 뛰어놀고 바비큐도 먹곤 한다”며 “맞벌이하느라 주변 전업맘들에게 신세를 질 때가 많은데 캠핑장에서 빚을 갚는다”고 했다. 회사가 제공하는 프로야구 테이블석 관람권도 순식간에 동난다. 이 회사는 서울이 연고지인 프로 야구 3팀의 연간 회원권을 구매해 직원들에게 관람권을 나눠주고 있다.

아이 키우는 직원들은 지난해 말 도입한 ‘시차 출퇴근제’에 큰 만족을 표했다. 정해진 근로시간을 채우기만 하면, 출근 시각을 오전 9시보다 당기거나 늦출 수 있는 제도다. 총무구매팀 김종열(40)씨는 “초등학생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면 회사에 10~20분씩 지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차 출퇴근제가 생긴 이후엔 여유 있게 출근할 수 있다”고 했다. 매달 셋째 주 금요일은 ‘해피 프라이데이’로 오전 근무 후 퇴근한다. 이날 일찍 출근하면 오전 중에 퇴근할 수 있고, 반차를 쓰면 하루 쉬는 것도 가능하다. 연구소에 근무하는 신서영(35)씨는 “영유아 검진 예약을 할 때 정말 유용한 제도”라며 “월요일 연차까지 붙여 가족 여행을 가는 직원도 많다”고 했다.

생산 부문의 경우 2020년부터 주 4일 근무제가 정착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도입된 재택근무제도 맞벌이 부부 육아에 큰 도움이 된다. 자녀 학비와 별도로 양육 수당을 연 60만~120만원씩 지급하고, 미혼 사원에겐 자기개발비도 준다. 한화제약은 ‘가족 친화 최고 기업’ 지정을 계기로, 올해 5월부턴 배우자 출산 휴가(10일) 사용을 의무화했다. 배우자가 출산하고 90일 안에 유급으로 최대 10일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를 의무 사용하도록 사규로 정한 것이다.

이 회사는 가족 친화적 조직 문화 덕에 직원 수 254명인 중소기업임에도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율이 40%에 육박한다. 자녀를 네 명이나 둔 다자녀 사원도 두 명 있다. 김경락 대표는 “직원과 그 가족이 행복해야 일의 능률이 오르고 업무 집중력도 높아진다”며 “직원들이 걱정 없이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생산성도 끌어올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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