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첫사랑’은 아이오와에 있다?
“묵었던 시골집 주소 아직 기억”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6년 7개월 만에 미국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5일(현지 시각) 기업인 만찬에서 “1985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아이오와주에 있는 드보체크 부부의 집에 머물렀는데 집 주소를 아직도 기억한다. 미국민과의 첫 대면이었다”고 말하며 아이오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이날 기업인 만찬에선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쟁쟁한 첨단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경쟁을 벌였는데, 시진핑이 개인적인 친밀감을 드러낸 이들은 미국의 ‘시골’ 아이오와 주민들이었다.
시진핑은 아이오와주를 미국과 인연을 맺은 첫 장소로 여기며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고 알려졌다.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열린 미 기업인 만찬은 미 기업인의 중국 투자 촉진 등 최근 냉각된 양국 경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시진핑이 이 자리에 농촌 마을인 아이오와의 주민들을 특별히 초청하고 연설에서도 친밀감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와 아이오와의 인연이 주목받고 있다.
미 중부 대평원 지역에 있는 아이오와주는 미국의 대표적인 옥수수·콩·소고기·돼지고기 산지다. 옥수수 등을 많이 재배하는 곡창지대라는 뜻의 콘 벨트(corn belt)에 속한다. 동부(미시시피강)와 서부(미주리강)가 모두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미국의 어느 주보다도 토질이 비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끝없는 옥수수밭이 펼쳐져 뉴욕·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와 달리 외국인에겐 낯선 지역이기도 하다. 대도시나 이름난 관광지가 없고 변변한 프로 스포츠 구단도 없다.
시진핑과 아이오와의 인연은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2세로 농촌 지역인 허베이성 정딩현 당서기였던 시진핑은 미국 농업과 목축 기술 견학을 위해 아이오와주 농촌을 찾았다.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대다수 서방국가에는 ‘폐쇄적인 공산국가’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시진핑 일행을 따뜻하게 반겼다. 바비큐 파티에 참석하고, 지역 농장을 둘러보며 주민들과 어울렸던 시진핑은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해 준 미국의 ‘시골 인심’에 큰 감동을 받으면서 아이오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키웠다고 한다.
시진핑은 이런 인연을 기억해 국가주석에 오르기 직전인 2012년에 아이오와주 맥스웰을 찾았다. 시진핑의 첫 방문 때 주지사였던 테리 브랜스태드가 다시 주지사로 당선돼 시진핑에게 방문 초청 편지를 보냈고 ‘27년 만의 재방문’이 성사된 것이다. 이때 시진핑은 첫 방미 때 출장 일정을 조율했던 주 공무원 세라 랜드의 집에서 주민들과 만나 “당신들은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고, 내게는 당신들이 곧 미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두·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주민 릭 킴벌리의 트랙터에 함께 타 직접 트랙터를 몰기도 했다. 킴벌리는 “(관계자들의 우려에도) 그는 트랙터를 잘 몰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15일 보도했다.
아이오와 주지사로만 20년 넘게 재임한 브랜스테드는 2017년 1월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주중 대사로 발탁돼 주지사를 중도에 사임하고 베이징에 부임해 2020년 10월까지 근무했다. 워싱턴의 유력 정치인도, 유명 기업가도 아닌 그가 주중 대사로 발탁된 데는 ‘시진핑의 30년지기 아이오와 절친(친한 친구)’이라는 인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대사 지명 당시 중국 외교부도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라고 반겼다. 시진핑은 15일 기업인 만찬에 브랜스테드를 비롯해 랜드, 킴벌리 등 아이오와 주민들을 초대했다. 아이오와 주립대 정치학 전문가 조너선 하시드 박사는 “아이오와 주민들과의 만찬은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던 중국의 기존 입장이 바뀌는 신호”라며 “농촌 주민들과 만나는 것은 시 주석의 인간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앞서 APEC 회의를 계기로 중국에선 시 주석이 38년 전 첫 방미 당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재조명됐다. 15일 바이든 대통령도 시진핑과 만난 자리에서 해당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설정해 둔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이 청년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시진핑은 “오, 그렇다! 38년 전이다”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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