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지만 약한 존재… 가부장제 속 ‘어머니’에 바치는 오마주[Weekend 문화]
어린시절 아버지의 외도 ‘트라우마’
고통받는 여성의 삶, 모성상 다뤄
미술사의 주요한 여성 작가들이 매체에서 주로 다뤄지는 방식에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로뎅의 카미유 클로델, 스티글리츠의 조지아 오키프, 디에고 리베라의 프라다 칼로 등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여성 작가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남성 작가의 뮤즈이자 희생양으로서 그들의 기구하고 특이한 삶에 맞춰진다. 이런 관점에서 1980년대 말 뉴욕현대미술관 전시 등을 통해 말년에 주목받았던 루이 부르주아(1911~2010·사진)는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여성작가이지만, 위의 공식을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다.
193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가 작업 활동을 이어간 부르주아는 굴곡진 삶을 살았고 자전적인 경험은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남성 작가의 연인이나 뮤즈가 아닌 철저하게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뉴욕에서 활동한 프랑스 출신의 이방인이자 1960~70년대 본인의 동료들이 미니멀적인 조각을 할 당시 드로잉 작업에 더 열을 올리던 '아싸(아웃사이더)'로서 자신만의 초현실주의적인 조각의 경지를 개척했던 그는 그야말로 독자적인 노선을 택한 인물이다. 남성 작가들이 주도하는 미술운동에도, 그렇다고 1960~70년대 여성미술에도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시몬느 보부아르가 '제2의 성'(1949)에서 소개하고 있는 유럽 중산층의 위선적 가부장제를 개인적인 삶 속에서 경험했고 창피할 수도 있는 가족사를 줄기차게 다뤘다. 자신의 영어 개인교사와 바람을 피웠던 아버지나 특별한 교감을 나눈 어머니가 바로 그 대상이다. 그런 과정에서 그의 작업에 나타난 여성은 강하면서도 계속 상처받는 존재다. 부르주아의 여성 예술이 진솔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거미,' '소용돌이,' '여성의 집' 등은 부르주아의 대표적인 모티브이며, 삼성미술관 리움도 엄마를 의미하는 '마망(Maman·2000)'이라는 제목의 거미 조각을 소장하고 있다. '거미'는 1947년 자전적인 드로잉에 처음 등장했고, 2000년 테이트모던에서 커미션 작업이 선보인 이래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소장한 현대미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조각품이다.
거미는 '여성의 집'에 이은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오마주다. 우선 거미는 스스로 몸에서 실을 뽑아서 직조하는데 타피스트리를 보수하던 집안의 사업을 암시한다. 아울러 거칠고 강인한 외형이 암시하는 바, 거미는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어머니상을 의미한다. 작가는 거미가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곤충이라는 점에서 자식을 보호하는 어머니를 연상시킨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거대한 다리 속에 감춰진 작은 몸체 아래에는 알이 달려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마망'은 부르주아의 초기 대표작 '시각 장애인의 토르소'와 대비된다. '마망'에서 거미의 다리는 흡사 말의 다리를 연상시키듯이 힘차고 위압감을 준다. 반면에 '시각 장애인의 토르소'에서 관객의 시선을 끄는 부분은 단연코 가슴이다. 원래 제목은 '눈을 가리고 하는 숨바꼭질'이라는 단어를 변형시킨 것으로, 신체를 두른 천 사이로 여러 개의 가슴이 튀어나와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위압적인 '마망'과 남성 토르소에 여성의 가슴을 부착한 '시각 장애인의 토르소'는 젠더적인 구분을 혼동시킨다. 거미상이 강력한 모성상이라면 '시각 장애인의 토르소'는 과도한 모성애를 갖고는 있지만, 눈가리개를 한 상태의 수동적이고 위험에 노출된 모성상에 해당한다.
1989년 거미 조각과 함께 작가는 '독방'(Cell) 시리즈를 선보였다. 독방에는 이전 드로잉에 자주 등장하던 나선형, 타피스트리를 복원할 때 사용하던 실, 작가의 과거를 연상시키는 오래된 옷 등이 등장한다.
나선형은 부르주아가 혐오했던 아버지의 정부이자 자신의 영어 선생님을 비틀고 싶다는 폭력적인 마음을 상징하고, 천의 촉감을 느끼면서 작가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독방의 구조다. 닫힌 독방은 성장기 작가의 감정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적인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독방은 한편으로는 잃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는 '보고'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헤어날 수 없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숨겨두는 곳이다. 독방은 거미 조각인 어머니가 자식을 보호할 수 있는 닫힌 과거의 공간이기도 하고 계단을 통한 출구가 마련돼 탈출이 가능한 공간이기도 하다.
안으로 열려 있으면서도 닫혀 있는 독방의 이중성이 80대의 여성작가가 모성상과 여성성을 인식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평생 아버지의 외도에 대한 트라우마를 작업에서 다루었기에 작가가 '마망'을 트라우마를 극복한 여성 이미지로 재현하고자 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 작업의 묘미는 작가가 어머니의 강인함과 약함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고통이나 삶의 괴로움을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고 가부장제의 트라우마를 현재진행형으로 남겨둔 부르주아의 집요함이 후세대 여성들을 일깨운다.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고동연 미술평론가·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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