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은 피하자”… 美·中, 군사대화 재개 합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는 미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 인근 ‘파이롤리 에스테이트(Filoli Estate)’에서 15일 정상회담을 하고 고위급 군사 대화 재개 등을 통한 양국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합의했다. 바이든은 회담에서 “세계는 미·중이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해 충돌·대립·신(新)냉전 확산을 막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시 주석도 “양대 대국이 서로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며 “지구는 중·미 양국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며 각국의 성공은 서로에게 기회”라고 말했다.
무역·안보 분쟁으로 충돌해온 양국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이후 1년 만에 정상회담을 했다. 시진핑의 방미는 6년 7개월 만이다. 미·중 정상은 이날 약 4시간 동안 대화하고 갈등 확대를 막기 위한 대화를 이어가자고 했다. 그러나 근본적 국익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선 이견을 드러냈고, 회담장 밖에선 험담 수준의 날 선 발언도 나와 양국의 간극이 여전히 크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시진핑은 회담 때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거나 대체할 계획이 없다. 미국도 중국을 탄압하거나 억제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의 중국 압박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바이든은 또한 중국의 대만해협 주변 군사 활동, 불공정 무역 관행, 티베트·신장·홍콩의 인권 탄압 등 민감한 문제를 언급했다.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은 열리지 않았고, 공동 선언문도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중 간에 대단찮은 진전이 있긴 했지만, 곧 깊은 갈등의 시험에 들게 될 것”이라고 이번 회담을 평가했다.
바이든은 회담 후 단독 기자회견에서 “그(시진핑)를 여전히 독재자(dictator)라고 부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독재자가 맞는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정부 형태를 기반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독재자”라고 했다. 바이든은 지난 6월 한 모금 행사 때 시진핑을 ‘독재자’라고 불렀다가 주미 중국 대사관이 항의하는 등 강력한 반발이 일었는데, 관계 회복을 도모한 회담이 끝나자마자 다시 공격적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날 미·중 정상회담은 양국 정상 단독 회담 및 양국 참모 등 12명씩이 배석한 확대 회담 2시간과 실무 오찬, 소인수 회담을 합해 약 4시간 동안 이어졌다. 중국 언론들은 시진핑이 미국에서 존중과 환대를 받았다는 점을 부각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정상회담 전 환영 행사는 짧았지만 공들여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다”며 “미국이 이번 회담을 고도로 중시한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시진핑은 바이든이 중시하는 ‘군사 대화 재개’와 ‘펜타닐 퇴치 협력’에 호응하는 것으로 미·중 관계 안정에 의지를 보였다. 양국은 1999년 체결한 군사해양협력합의를 토대로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장관급 대화 채널을 가동해 왔지만,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 측의 거부로 대화가 중단됐다. 양국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국방장관 간의 미·중 국방 정책 협의 대화, 합참의장과 인도·태평양사령관 등 작전 지휘자 간의 통화, 해상 근무자 간의 미·중 군사해사협의협정 회의 등 3개 채널의 군사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미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마약’으로 불리며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퇴치에도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펜타닐의 원료 물질을 생산해 수출하는 중국 회사들을 중국 당국이 직접 단속하기로 했다. 이는 2024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이 미국 내에서 내세울 수 있는 성과다. 바이든은 회담 후 기자회견 때 이 점을 부각하며 “여태껏 한 것 중 가장 건설적이고 생산적 회담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가지 합의를 제외하면 양국 정상은 각자의 입장을 강력히 개진했고 기존의 주장을 고수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시진핑은 “대만 문제는 언제나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민감한 문제”라며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고, 대만을 무장시키는 것을 멈추고 중국의 평화 통일을 지지해야 한다”고 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전했다.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이나 군사훈련 지원을 중단하라는 요구였다. 신화통신은 또 시진핑이 “중국은 결국 통일될 것이고, 반드시 통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바이든은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면서도 “미국은 어느 쪽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도 반대한다”고 맞섰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시 주석은 평화 통일을 선호한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곧 무력이 사용될 수도 있는 여건들을 거론했다”면서도 “시 주석은 중국이 2027년 또는 2035년에 대만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미국에서 계속 나오는데 그런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화권 매체들은 “시진핑은 이번 회담에서 바이든이 ‘대만 독립 반대’를 말하길 원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때부터 악화 일로를 걸어온 무역 문제에서도 두 정상은 각자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거나 대체할 계획이 없다. 미국도 중국을 탄압하거나 억제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수출 통제, 투자 심사, 일방적 제재 등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엄중하게 훼손했다”며 “중국 과학기술을 탄압하는 것은 중국의 ‘고품질 발전’을 억압하고 중국 인민의 발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장비·기술의 대중 수출 통제, 인공지능(AI) 등의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대중 투자 제한 등의 조치를 해제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정책, 비시장경제 관행, 미국 기업에 대한 징벌적 조치 등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며 “미국의 선진 기술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약화하는 데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이런 대립적 분위기 속에 미국이 원했다고 알려진, 군사 분야 인공지능(AI) 사용 제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미국은 드론 같은 자율 무기 체계나 핵탄두 관리에 AI를 사용하지 않기로 중국과 합의를 도출하길 원했다. 그러나 중국이 호응하지 않았고 양국은 ‘AI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정부 간 대화를 하자’는 어정쩡한 합의에 그쳤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과 시진핑의 대화는 별다른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으나, 대화를 계속하기로는 했다”며 “양국을 충돌 위기로 몰아간 사안들에 대해선 진전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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