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언론은 수명을 다했다고? 당신은 틀렸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3. 11. 1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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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파편화된 소통
유사 언론·가짜 뉴스까지 범람
게다가 국가 권력 시장 권력은
거대한 괴물처럼 커가고 있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제대로 된 비판 언론 절실
전문성·디지털 능력 겸비한
우수한 언론 인력 양성해야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교내 식당에서 학과 후배 교수들과 점심을 하고 서둘러 일어서는데 옆 테이블의 정치학 전공 교수가 불쑥 말을 건넸다. “윤 선생, 언론 좀 제대로 하라고 해요.”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으로 참석한 ‘언론학의 미래’ 세미나에서, 발제자는 네트워크 시대를 맞아 언론학 연구와 교육의 중심도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 들어 언론의 역할을 폄훼하고, 심지어 종말을 점치는 말이 부쩍 늘었다. 질 낮은 유사(類似) 언론이나 편향된 진영 언론의 폐해를 비판하는 것과는 다른, 언론의 근간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들이다. 그 핵심이다. 첫째, 종이 신문으로 대표되던 언론은 마차가 자동차에 밀려 사라지듯 자연도태하고 있다. 둘째, 보다 근본적으로 언론을 포함한 수직적인 매스미디어는 수평적인 포스트(post)매스미디어 시대에 맞지 않는다. 셋째, 언론의 주체는 언론인이 아닌 시민이다.

이 주장들은 명백히 잘못되었다. 첫째, 언론의 역할은 종이에서 디지털로 물리적 형태가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언론의 역사는 새로운 기술을 지속적으로 수용하며 그 본연의 역할을 강화해 온 과정이었다(M. 셧슨·2020). 우리를 둘러싼 환경, 특히 권력의 오남용과 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디지털 시대라고 권력의 속성이 달라질 리 없다. 이에 맞선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게 남을 것이다.

둘째,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는 언론의 필요성을 강화한다. 최근 이 주제를 천착한 언론학자 김용찬(2023)에 따르면,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는 큰 미디어에서 작은 미디어, 카리스마에서 평범한 개인들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명암이 교차한다. 이제 개인들은 자기 자신에 갇힌 디지털 나르시시스트가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자서전이 나온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많은 자화상이 나온 적이 있었던가(p.461)?”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은 같은 부류의 집단과 연결될 뿐 이질적인 타자들로 구성된 사회 공동체에서 오히려 멀어진다. 이른바 연관성 초위기 상황이다. 이 위기는 언론의 역할을 재소환한다.

셋째, 시민은 언론인을 대체할 수 없다. 언론 현장을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언론인이 수행하는 역할의 본질은 특권이 아닌, 엄정한 원칙과 규범에 따라 주 6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몸을 가는 헌신이다. 언론인의 편향성 때문에? 그렇다면 이를 바로잡을 도덕적·비정치적 주체로 호출되는 시민은 누구인가. 촛불 시민인가, 태극기 시민인가. 언론의 목표는 시민에게 봉사하는 것이지만, 그 주체는 소명 의식과 규범을 체화한 전문 언론인일 수밖에 없다.

정리한다. “언론은 수명을 다했다”는 주장은 틀렸다.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상의 파편화된 소통에 매몰되고, 유사 언론, 인터넷 트롤, 뉴스 로봇 등 수많은 거짓말 장치(Lie Machines)가 홍수처럼 허위 정보를 범람시키는 상황(P. 하워드·2020)은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언론의 역할을 요청한다.

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언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 게 아니라, 이 같은 요청에 언론이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제 언론은 미로처럼 분화된 국정 통치 체제, 방대한 예산·인력으로 무장된 권력기관, 국경을 초월한 거대 초지능 기업들을 상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언론의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저숙련 뉴스 노동자(precariat)로 내몰리는 언론인들의 소명 의식과 규범성을 복원하고, 권력의 토대인 거대 네트워크와 데이터에서 진실을 캘 수 있는 디지털 전문 인력으로 이들을 재탄생시켜야 한다.

이 같은 변화에 실패할 때 언론은 생명과도 같은 권력 감시와 비판의 권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권력 감시·비판은커녕 언론은 권력의 감시와 비판을 받는 징벌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멀리서 예를 찾을 것 없이, 한국 사회의 언론은 최근 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가 권력과 시장 권력은 거대한 괴수처럼 커가는 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언론은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언론이 사회를 지켜왔듯 사회가 언론을 지켜야 한다. 그 출발점은 규범성, 영역 전문성, 디지털 능력을 겸비한 우수한 언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 미래 언론의 주체들이 주도하는 혁신은 새로운 언론의 시대를 열고, 이는 진영으로 찢긴 정치와 사회를 바꾸는 의미심장한 연쇄반응으로 이어질 것이다.

언론 단체와 대학을 중심으로 그 논의가 시작되었다. 과문한 탓에 백년하청 같은 정치 쪽엔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그 정치학 전공 교수를 만나면 말빚을 갚으려 한다. “언론 걱정하지 말고, 제발 정치나 잘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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