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팝 아티스트’ 숨결이 깃든 집, 후배 예술가들 배움의 터전으로
탄생 100주년 맞아 새 단장
“3층 외벽에 줄무늬 모양 보이시죠? 평소 작품에 줄무늬를 많이 사용한 로이에 대한 재미있는 오마주(hommage·존경)입니다.” 최근 만난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 관계자는 맨해튼 남서쪽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갈색 3층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행복한 눈물(Happy Tears·1964)’의 작가로 국내에 잘 알려진 미국의 전설적인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이 살던 집이자 작업 공간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은 그의 아내 도로시와 함께 1987년 금속 작업장과 차고로 쓰이던 이 건물을 구입해 199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용했다. 친한 동료였던 엘즈워스 켈리, 줄리언 슈나벨, 프레데릭 투튼 등 유명 화가와 작가들도 안방처럼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이 건물 안과 밖 곳곳에 리히텐슈타인의 손길과 숨결이 녹아 있다.
그의 아내 도로시는 지난해 휘트니 미술관에 이 건물을 기부했다. 리히텐슈타인은 1965년 이 미술관의 전시회에 작품을 처음 선보이며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다. 조각, 판화, 드로잉, 그림 등 400여 점을 이 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미술관은 현대 미술의 거장인 리히텐슈타인이 사용하던 공간이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보고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다, 차세대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휘트니미술관은 1968년부터 독립 학습 프로그램(ISP·The Independent Study Program)을 운영해왔다. 매년 15명의 예술가, 평론가, 큐레이터가 함께 작품을 만들거나 의견을 나눈다. 그렉 보도위츠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교수, 나오미 벡위드 구겐하임 미술관 부관장 등이 이 프로그램 출신이다. 그동안 독립된 장소가 없어서 맨해튼 곳곳에 임대를 해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이제는 리히텐슈타인이 사용하던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휘트니미술관은 리히텐슈타인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올해 문을 열기 위해 지난 11개월간 쉼 없이 리모델링을 진행했다고 한다.
미술관 측에 따르면 리히텐슈타인은 이 건물 1층에서 작업을 했고 2층은 도로시와 함께 거주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당시에도 3층이 있긴 했지만 공간이 협소해서 이번에 새로 3층을 지어 올렸다고 한다. 이를 위해 뉴욕시 랜드마크 위원회의 승인도 받았다. 원래 있던 건물과 괴리감이 느껴지면 안 되기 때문에 기존 벽돌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색상의 벽돌을 덴마크에서 가져와 현장에서 크기에 맞게 잘라 사용했다. 111년 전인 1912년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썼다.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천장에 높게 달린 철제 샹들리에가 보인다. 로이와 도로시는 세계 곳곳에서 장식품을 수집했는데 이것은 프랑스 파리의 한 극장에서 가져와 설치했고, 미술관은 이를 그대로 보존했다고 한다. 바닥 곳곳에 떨어진 작은 물방울 같은 모양은 리히텐슈타인이 작업하는 과정에서 튄 페인트 얼룩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잭슨 폴록이나 토머스 콜 같은 유명 작가들의 스튜디오처럼 이곳도 리히텐슈타인이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면서 “일종의 타임캡슐 같은 것”이라고 했다. 리히텐슈타인이 원래 거주하는 곳으로 사용한 2층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흔적이 스며든 가죽 소파가 놓여 있다. 앉아 보니 꽤 푹신했다. 리히텐슈타인과 아내 도로시가 쓰던 빈티지 의자인데 프로그램 참여자들을 위해 그대로 남겨뒀다고 한다.
도로시는 리모델링을 마치고 변화된 건물 모습을 둘러보며 “곳곳에서 남편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고 감격했다고 한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남편 덕분에 이 건물은 예술적, 지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됐다”면서 “이보다 더 의미 있게 스튜디오를 활용하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매년 9월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진행된다. 7월과 8월에는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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